"가족 생사 궁금해도 일 계속…일본인 자랑스럽다"

이와테ㆍ미야기현 서울사무소 침통한 분위기 속 업무

"제가 지난 주에 찾았던 육지들은 바다가 됐습니다.거기서 같이 밥 먹었던 사람들은 모두 연락이 안돼요.

약한 지진이 두 번이나 나길래 '이건 여기가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이라고 대화를 나눴는데…."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이와테현 서울사무소에서 4년째 근무 중인 김주희(36·여)씨는 일본 대지진으로 가장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이와테현에 출장갔다가 지진이 난 당일 오후 1시40분 센다이 공항을 떠났다.

그는 "지난 주 출장 때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가장 많이 본 해안가 가마이시시, 오후나토시에 다녀왔었다"며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안돼 지진이 났는데 한 시간만 늦게 탔어도 나는 여기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가 일하는 이와테현 서울사무소는 이달 말까지 임기인 다카하시 토시하키(47) 소장이 부모와 연락이 닿지 않아 내내 우울하고 침통한 분위기였다.

사무실은 TV조차 꺼 놓은채 각자 자리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 속 NHK 방송만 뚫어져라 응시하는 분위기였다.

이 사무소는 홋카이도와 북 도호쿠 3개현을 모두 맡고 있어 다카하키 소장은 부모의 생사를 모르는 데도 일본에 가지 못한채 이날도 손님을 맞으며 일을 하고 있었다.

이날 서울 중구 정동의 미야기현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아베 타가오(47)소장도 일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에서 3년째 근무 중인 아베 소장은 현재 부모와 동생 가족이 미야기현에서도 특히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진 구리하라시에서 실종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그는 "지금이라도 비행기표를 구해서 일본에 돌아가 가족과 친구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싶지만 사무소 일도 있고…"라며 "정전 때문에 연락이 안 된다고 믿고 싶다.어두운 쪽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베 소장은 "현청 직원인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보니 '가족이 다 행방불명 됐다' '집이 흔적도 없이 떠내려갔다'면서도 직원들이 24시간 현청에서 대기하며 묵묵히 일한다고 했다"며 "서로 무서운 대답이 나올까봐 가족 안부를 묻지 않는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지진이 났던 순간 마침 현청 직원과 통화 중이었다는 그는 "2009년 지진 때는 쓰나미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쓰나미가 몰아쳐서 해안가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핵폭탄이 떨어진 것 같다더라"고 덧붙였다.

아베 소장과 직원들은 현재 사무소에서 한국에 있는 일본인 유학생 등이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일본으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을 알아봐주고 있다.

그는 "지진 때문에 집이 무너지고 가족이 죽고 다치는 상황에서도 서로 물과 음식을 나누고 질서를 지키는 모습에 일본인임이 자랑스럽다"며 "지진이 난 뒤 걱정해주고 격려해주는 한국 친구들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동에서 미야기현 사무소와 같은 건물에 입주한 야마가타현 서울사무소도 자국민에게 닥친 엄청난 재앙 앞에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만큼 다른 현을 돕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한국에 파견된 지 2년째인 스가와라 야스시(41) 소장은 "우리 현은 방사능 노출 위험은 있지만 지진 피해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라 미야기현과 후쿠시마 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 무사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주변에 힘든 분들이 굉장히 많으니까 손놓고 있기보다 도움을 강구할 방법을 찾는 게 시급한 것 같아 감정을 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yjkim8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