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다니며 수유 어려워…'모유 구하기' 나서

전업주부보다 일찍 모유수유를 중단하는 사례가 많은 '직장맘'들이 현대판 젖동냥에 나서고 있다.

국내 대기업에서 일하는 김인영(30·여)씨는 지난해 10월 첫 아이를 출산했다.

김씨는 모유에 각종 면역성분과 두뇌발달에 좋은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모유 수유를 시작했다.

그런데 3개월의 출산휴가가 끝나고 직장에 복귀하면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업무에 바빠 제때 젖을 짜지 못하다보니 모유량이 줄었다.

고민 끝에 김씨는 인터넷 카페에 '모유 구함'이라는 글을 올렸다.

다른 산모가 짠 모유라도 얻어 아기에게 먹이기로 한 것이다.

2일 인터넷의 각종 산모 카페에서는 김씨처럼 모유를 구하거나 남는 모유를 나눠준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모유를 구하는 여성은 대부분 직장에 다니는 직장맘이다.

일터에서 모유를 짤 여건이 안 돼 모유 수유를 중단했거나 '눈칫밥' 때문에 제때 모유를 짜지 못해 모유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직장인 이지연(29·여)씨는 "근무 중 20~30분씩 자리를 비우고 모유를 짜려면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수유실에 가려는데 갑자기 회의를 할 때도 있다. 점심시간을 쪼개서 수유실에 다녀온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가끔 모유를 나눠준다는 글이 올라오면 '꼭 나눠달라'는 댓글이 수십 개가 붙는다.

이 중에는 의정부에서 과천까지 수십㎞ 거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도 있었다.

갖은 노력을 다해 모유를 구해와도 남의 젖을 먹일 때면 직장맘들은 서글픈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한다.

최현정(31·여)씨는 "직장 다닌다고 다른 사람에게 아기를 맡기는 것도 속상한데 '젖까지 남의 젖을 먹여야 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기에게 미안하다"라며 서글픈 심정을 털어놨다.

시민단체들은 직장맘을 현대판 젖동냥에 나서게 한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민생희망팀장은 "국가는 저출산 위기를 들먹이며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직장 다니는 여성이 젖을 짜지 못해 젖동냥에 나서는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안 팀장은 "직장에 다니는 것과 관계없이 마음 놓고 아기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가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복지 서비스"라며 "기본조차 해주지 않으면서 아기를 더 낳으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염치없는 요구"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kind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