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 연휴기간 동안 충청과 호남 · 영남지역의 민심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유치 가능성에 맞춰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1일 '과학벨트 입지 원점 재검토' 발언 이후 "입지를 빼앗길 수 없다"는 충청권 민심과 '유치 가능성'을 점치는 호남 · 영남 민심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었다. 또 물가,구제역 등 민생을 뒤흔드는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불만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지역구 의원들이 전하는 설 민심을 요약한다.

◆박병석(민주당,대전 서구갑,59)

충청도 민심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과학벨트에 대한 분노였고 또 하나는 생활고에 대한 탄식이었다. 과학벨트와 관련해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그렇게 충청도를 속일 수 있느냐"는 비난이 많았다. "세종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안해서 반대했다손 치더라도 과학벨트는 이 대통령 본인이 제안했던 것 아니냐.사과나 이유도 없이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뒤집을 수 있느냐.충청도를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노인분들 중에는 "충청도를 핫바지로 보느냐.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분도 있었다. 과학벨트 경쟁지역으로는 광주보다 포항을 꼽는 분들이 많았다. '형님 지역'인 포항이 과학벨트 입지로 더 유력하다는 것이다. 생활고와 관련해선,물가고와 전세난,기름값 이런 것에 대해 올해처럼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제발 서민들 좀 먹고 살게 해달라"는 얘기들이 많았다. 모든 게 다 올랐고 안 오른 건 월급하고 쌀값밖에 없다고 한다.

◆조영택(민주당,광주 서구갑,60)

대통령이 과학벨트 입지를 원점부터 검토한다고 하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광주로 당기자"는 의견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복합의료단지도 충청권과 대구가 나눠서 했다는 점을 선례로 꼽는 사람도 있다. 충청권 사람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벨트를 분산시킨다고 치면 우리도 거기에서 빠지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어차피 대구에는 기초과학과 관련된 연구시설이 몰려 있다. 수도권은 수도권 나름대로 여러 대기업들의 연구시설이 있지 않나. 때문에 이런 과학연구단지는 광주 쪽으로 분산시켜 키울 필요도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 밖에 물가와 관련된 고민을 얘기하는 분이 많았다. 멀리 내다보는 분들은 원가 상승압박이 커지니까 봄에 물가 대란이 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광주가 야당 도시여서 그런지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보고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고 평가하는 분들도 있었다.

◆김세연(한나라당,부산 금정,39)

부산 지역민들 사이에선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문제가 화두였다. 부산 시내 주요 지역엔 '신공항은 가덕도가 최적지'란 현수막이 많이 걸려 있다. 현재 항공 수요 증가율을 봤을 때 부산 김해공항으론 20년 정도밖에 버티지 못한다. 지역주민들도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1년도 예산 통과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정치인들끼리 그만 싸우라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부산엔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많긴 하지만,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이 싸우는 모습은 그만 보고 싶다는 의견이 대체적이었다.

◆김영우(한나라당,경기 포천,44)

구제역으로 지역경제가 완전히 얼어 붙었다. 중앙정부의 방역 · 검역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분들이 많았다.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최근 정치권에서 이슈가 된 복지와 개헌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인들만의 싸움 아니냐" "다 말장난이다"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정부는 물가가 뛰는데 뭐하냐는 얘기도 많았다. 물가관리 대상 품목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 위주로 짜여졌다는 것이다. 예컨대 배추,무와 같은 채소류들은 가격이 폭등한다고 언론에 나올 때도 지방에선 가격 변동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 지역민심이 반영된다는 느낌이 들 리가 없다. 오히려 농어촌에선 텔레비전,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들의 가격이 문제다.

◆황영철(한나라당,강원 홍천 · 횡성,46)

강원도에선 다음 지사가 누가 될지에 대해 얘기가 많았다. 벌써부터 엄기영 전 MBC 사장이 한나라당에서 공천을 받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다. 여야를 떠나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누가 가장 잘 일할 수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구제역 피해 상황은 '2차 단계'로 넘어간 것 같았다. 구제역 때문에 지역민들 전체가 이동에 제한을 받으면서 지역 경제가 마비됐다. 정부 보상을 받은 축산농가와 이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분들 사이의 갈등도 커지고 있었다.

박신영/민지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