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검찰 체면만 생각하는 오기 수사 아닌가요?" 5개월 째 진행되고 있는 검찰의 한화그룹 수사를 지켜 본 한 대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 24일 검찰이 청구한 홍동옥 한화그룹 전 최고재무책임자(CFO)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이 홍 사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건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 번째다.

검찰은 작년 9월 비자금 조성 혐의로 한화에 대한 수사를 착수한 뒤 지금까지 계열사 20여곳을 압수 수색하고 그룹 관계자 300여명을 소환 조사했다. 하지만 별다른 수사성과를 내지 못한 데다 비리 혐의자로 지목한 인물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모두 4차례 기각되면서 '먼지털이식의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계획했던 대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으면 한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데,검찰 자존심을 위해 티끌이 나올 때까지 파헤치겠다는 수사 행태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를 넘기면서까지 검찰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한화는 아직까지 올해 그룹 차원의 투자 등 사업 계획과 정기 인사를 확정짓지 못했다. 한화 관계자는 "사실상 그룹의 경영 활동이 몇 개월째 멈춰선 상황"이라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검찰 수사가 빨리 끝나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기업 범죄는 우리 사회의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시장 경제의 뿌리를 흔든다는 점에서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 사안이다. 그렇다고 모호한 증거만 갖고 기업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시간끌기식 수사는 검찰권 과잉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검찰이 괜한 오기를 부리고 있다"는 기업들의 볼멘 목소리를 잠재우기도 어렵다. 검찰이 예리한 증거 잣대를 갖고 신속히 수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이유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취임 직후 검찰의 수사 패러다임 변화를 주문하며 "온몸을 헤집는 식의 수사를 지양하고,외과 의사가 환부만을 도려내듯이 정교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모습은 노련한 외과 의사가 아닌 미숙한 마취과 의사는 아닌지 검찰 스스로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정호 산업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