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논현동에 사는 이정현씨(46 · 회사원)는 스마트폰으로 전셋집을 체크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직장에서도 틈틈이 인터넷에 접속해 용인 전셋값 시세와 물건을 확인한다. 전세계약 만료가 내달 말로 닥치자 최근에는 아예 현지 부동산중개업소로 퇴근한다. 이씨는 "전셋값이 2억원에서 4억원으로 두 배 오른 탓에 출퇴근에 한 시간씩 더 걸리는 용인에서 집을 구하고 있지만 물건이 없어 답답하다"고 한숨지었다.

전셋값 상승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11일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전국 전셋값은 직전 주에 비해 0.2% 올랐다. 2009년 3월부터 23개월 연속 상승세다.

전세 비수기인 겨울에도 전셋값은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1.0% 올라 2005년 이후 8년 만에 평년 동기 상승률 0~0.4%대를 훌쩍 넘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연구실장은 "내달 말 봄 이사철 수요까지 가세하면 전셋값이 또다시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치솟은 전셋값 때문에 외곽으로 밀려나는 이른바 '전세 유민(流民)'이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수도권 전세 유민이 최고 147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의 2008년 주거실태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 2361만명 중 49.3%인 1180만명이 세입자다. 이 중 절반인 590만명이 한 해 동안 집을 옮긴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작년 8월 잠실 전세대란 때 20~25%가 전세를 옮긴 것을 감안하면 재계약을 포기하고 서울 외곽으로 이주하는 전세 유민은 118만~147만명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난이 반복되는 것은 정부가 달라진 전세시장 구조를 파악하지 못한 채 예전의 대책만 되풀이하는 '헛발질'로 실효성을 얻지 못한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세난을 바라보는 정책 결정자의 시각이 예전 주택시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정종환 국토부 장관은 최근 "전세난의 원인은 주택 공급 부족이며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며 소형 · 임대주택 활성화 등 전세시장 주 수요자인 중산층보다 저소득층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종덕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 부동산투자부문장은 "시장은 변하는데 정부가 1970~1980년대식 대책을 고집해 전세난이 고질화 · 장기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