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범인 `기퍼즈 의원이 누구냐' 물은 뒤 총격 `아수라장'
`반정부' 메시지 수차례 게재…경찰, "정신적 문제있다"
살해협박 속 `정치테러' 가능성…공범 1명 추적

미국 애리조나주(州) 투산에서 8일(현지시각) 정치행사 도중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40)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괴한의 총기 난사로 연방판사 등 6명이 숨지고 중태에 빠진 기퍼즈 의원(40)을 포함해 13명이 부상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 제러드 리 러프너(22)의 범행 동기는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러프너가 범행 전 반(反)정부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들을 인터넷에 올린 점으로 미뤄 수사 당국은 기퍼즈 의원을 겨냥한 정치적 테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공범 1명의 신원을 확보, 추적 중이다.

촉망받는 현역 하원의원의 피격 소식에 워싱턴 정가는 충격에 빠졌으며 하원은 건강보험개혁법 폐지안의 본회의 표결을 연기하기로 결정하는 등 정국 흐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총격 사건 순간 = 총기 난사는 이날 애리조나주 투산의 한 쇼핑센터에 있는 식료품점 세이프웨이 앞에서 기퍼즈 의원이 유권자들과 만남의 행사를 진행하던 중 발생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고 당시 러프너는 불과 3~4피트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먼저 기퍼즈 의원을 향해 총을 먼저 발사하고 곧바로 기퍼즈 주변인 및 기퍼즈 의원과 얘기를 나누려 줄 서 있던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난사했다.

곧바로 현장은 사람들의 비명과 울음으로 아수라장이 됐으며 러프너는 총을 쏘고 곧바로 달아나려다 시민 2명과 격투 끝에 붙잡혔다.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앨릭스 빌렉(19)은 AP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러프너가 처음에 검정 모자와 배기바지 차림으로 현장에 도착, 기퍼즈 의원이 누구냐고 물어봤다고 말했다.

빌렉이 "당신 차례가 되면 그녀가 당신에게 즐겁게 얘기를 해줄 것"이라고 대답하자 러프너는 자리를 잠시 떴고 몇 분 뒤 곧바로 돌아와 기퍼즈 의원과 청중 사이의 테이블을 밀어젖히면서 갑자기 난입, 총격을 시작했다고 빌렉은 전했다.

다른 목격자인 의사 스티븐 레일 박사는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프너가 별다른 말 없이 "결연한 표정으로" 나타나 "특별한 표적 없이 가까운 사람부터 모두에게 난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청중 등 20~25명 정도가 빽빽이 몰려 있던 현장에서 러프너가 아주 가까이서 총을 난사함에 따라 "아마도 최소 절반 정도가 총을 맞았다"며 사고 직후 기퍼즈 의원은 "사지를 움직이는 등 의식이 있었다"고 레일 박사는 덧붙였다.

러프너가 사용한 총기는 9㎜ 글록 권총으로 알려졌다.

글록 권총은 군 특수부대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이라크전 당시 사담 후세인 전대통령이 체포될때까지 소지하지 있었던 총기류이다.

경찰은 이날 총격으로 존 롤(63) 연방지방판사, 기퍼즈 의원 보좌관 게이브 지머맨(30), 9살 소녀 크리스티나 그린, 도로시 머레이(76), 도윈 스타더드(76), 필리스 셰크(79) 등 6명이 숨지고 기퍼즈 의원 등 13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총탄이 관자놀이로부터 이마를 관통한 기퍼즈 의원은 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으나 중태다.

기퍼즈 의원이 입원한 병원 관계자는 치료 중인 부상자 10명 가운데 5명이 중태라고 전해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 동기 및 수사 상황 = 총격 사건을 수사 중인 클래런스 더프닉 피마 카운티 보안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프너가 정신적 문제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범인 러프너는 범행 후 달아나다 현장 주민에게 붙잡혀 경찰에 신병이 넘겨졌으며 아직 명확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방수사국(FBI)은 특히 러프너가 범행 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유튜브 동영상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 점을 주목하고 있다.

러프너는 이들 동영상에서 "정부는 문법을 통제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제어하고 세뇌하고 있다"거나 화폐 제도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동영상 속) 남성은 자제력을 잃은 듯 들리지만 동시에 반(反)정부 운동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구호들을 떠들어 대고 있다"고 극단주의 조직 감시단체인 '남부빈곤법률센터(SPLC)' 관계자는 분석했다.

SPLC 관계자는 그러나 범인 러프너는 SPLC가 지정한 혐오범죄 집단이나 극단주의자 명단에 올라 있지는 않다고 전했다.

수사 당국은 러프너가 보수성향이 강한 애리조나주에서 4년 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여러 사안에서 분명한 목소리를 낸 기퍼즈 의원을 직접 겨냥한 것인지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다.

기퍼즈 의원은 다수 민주당 의원들과는 달리 총기소지 문제를 찬성해 왔으며 국경감시 강화나 최근 논란이 된 애리조나주의 이민법은 반대했다.

기퍼즈 의원은 지난해 초 건강보험개혁법안 처리 때 찬성표를 던진 이후 수 차례 살해 등 협박을 받아왔으며 사무실에 누군가가 돌을 던져 유리창이 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미국 언론은 전했다.

◇ 충격에 빠진 미 정가 = 현역 하원의원의 피격 소식에 워싱턴 정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미국 현역 연방 의원이 피격된 것은 1978년 기아나의 사이비 종교집단 마을인 존스타운을 방문했던 레오 라이언 하원의원이 총격을 받아 사망한 이후 33년만이다.

당장 하원은 이날 참변에 따라 다음 주 공화당 주도로 추진할 예정이던 건강보험개혁법 폐지안의 본회의 표결을 연기하기로 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사건 직후 백악관에서 주요 방송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사건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비극"이라면서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도 성명을 통해 "기퍼즈 의원과 보좌진에 대한 분별없는 공격에 경악한다"면서 "공직에 있는 한 사람에 대한 공격은 모든 공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런 끔찍한 폭력 행위는 국가적 비극으로, 오늘은 우리 국가에 매우 슬픈 날"이라고 기퍼즈 의원의 쾌유를 기원했다.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인 존 매케인은 별도 성명을 통해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저질렀건 간에 이들은 애리조나와 이 나라, 인류의 수치"라고 비난했다.

(투산.워싱턴 AP.dpa=연합뉴스) air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