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엔 건강 식단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몸만들기의 출발이 올바른 식단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건강에 좋은 특정 영양소를 찾는 데 골몰하던 영양학 연구도 건강식단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최근엔 국가별 · 민족별로 정립돼온 식단에서 좋은 점을 취사선택하면 '최상의 식단'을 꾸릴 수 있다는 견해가 힘을 얻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식단이 한식과 지중해식이다. 한식은 짠 음식이 많다는 단점을 개선하면 체중감량과 성인병 예방 효과가 서양식보다 뛰어나다. 풍부한 야채 과일 콩류 복합당질(전곡류)을 중심으로 치즈 요구르트 등 유제품,생선 조개 등 해산물,여기에 올리브유를 뿌리고 적포도주 한 잔을 곁들이는 지중해 식단도 영양학자들이 추천하는 건강식단이다. 건강밥상이란 결국 노화를 늦추고,비만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골다공증을 개선 또는 예방하며,항암 및 면역력 강화 효과를 발휘하는 식단이다.

인제대 서울백병원과 호주 시드니대학병원이 2009년 4월부터 15개월간 시드니에 사는 비만 성인 70명을 대상으로 각각 12주간 한식과 서양식을 섭취토록 해 다이어트 효과를 비교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서양식 섭취군은 한식 섭취군에 비해 임상시험 기간의 다이어트로 식욕이 더 올라갔으며 이로 인해 다이어트를 장기간 유지하는 게 매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식은 장기적으로 배고픔을 느끼지 않으면서 체중을 감량하고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복부비만과 당대사 개선에 효과적인 것으로 결론났다.

강재헌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서양식 섭취군은 영양사의 지도로 임상시험 기간 중 총 열량 섭취량을 575㎉ 줄였으나 한식 섭취군은 26㎉만 감소시켰다"면서 "그럼에도 서양식은 허리둘레를 3.3% 줄인 반면 한식은 5.3% 줄였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에너지 섭취량이 같다고 가정해 추산하면 서양식군은 허리둘레를 2.9% 감소시키는 데 반해 한식군은 6.1%나 줄인다"고 말했다. 복부체지방,혈당조절 상태를 반영하는 공복시 혈당과 혈중 인슐린 농도,인슐린저항성(인슐린이 적당량 분비돼도 말초세포의 혈당강하 효과가 미진한 현상)의 측정지표인 HOMA-IR(정상치는 2 이하,0에 가까울수록 좋음) 등이 한식 섭취군에서 낮게 나타났다.

같은 병원 박현아 가정의학과 교수는 "한식은 조리과정에서 기름을 적게 사용하고 육류를 소량 부재료로 쓰며,김치는 칼로리가 낮은 발효식품으로 유산균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비만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식 반찬은 여러가지 녹황색 채소로 만들어 미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하루 다섯 가지 색깔의 과일과 채소를 먹자는 'Five A Day' 운동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치를 비롯해 고추 된장 간장 젓갈 등 짜고 매운 음식을 많이 먹는 식사습관은 한국이 위암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되는 원인이다.

또 도정을 많이 한 백미를 즐겨먹어 쌀눈(배아)에 붙어 있는 비타민 미네랄 단백질 필수지방산 섬유질을 섭취하지 못하고 단기간에 혈당이 올라가는 손해를 본다. 따라서 건강을 위해서는 도정이 덜 된 쌀에 잡곡이나 콩류를 섞어 먹는 게 좋다.


지중해식은 50여년 전 미국 록펠러재단이 그리스 크레타섬 주민들의 식생활과 건강상태를 조사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크레타섬 주민의 평균 수명이 다른 서구 국가들보다 훨씬 길었다. 이후 지중해식단을 먹는 사람의 암 사망률이 24%,심장질환 사망률이 33% 낮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 연말 미국 시카고 러시대 의학센터의 크리스틴 탱니 박사팀은 65세 이상 미국인 400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지중해식과 보통식을 먹게 하고 3년마다 단어 암기력과 기본 수학능력을 테스트해 인지능력을 평가한 결과 지중해식 그룹은 55점으로 보통식 28점의 갑절이었다.

지난해 3월 이탈리아 나폴리대 연구에서는 당뇨병 진단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지중해식 식사가 혈당관리를 위해 약물을 투여해야 하는 가능성을 일반식사보다 37%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중해식 식사는 체내 전반적인 염증을 줄여 류마티스 관절염의 통증 및 경직 현상을 완화시키는 것으로 입증됐다.

이송미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양팀장은 "지중해식 식사 경향이 강할수록 한국인이 취약한 위암을 비롯해 각종 만성 질환의 발병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며 "한식에서 김치를 제외한 채소와 야채의 섭취를 늘리고 올리브유 대신 들기름으로 드레싱을 하며 적포도주를 복분자주로 대체한다면 지중해식 못지 않은 건강식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매일 고등어 한 토막이나 연어 몇 슬라이스를 먹고 치즈 등 유제품,두부 등 콩식품을 추가한다면 완벽에 가까운 건강식사를 영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중해식과 관련,올리브유나 적포도주의 효과가 과대포장됐고 그리스인들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고 좋은 자연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건강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지중해식 마케팅에 대한 상업성 시비에도 불구하고 한식과 더불어 소박한 '슬로 푸드'의 원형으로 건강식단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