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중국 'G2'라지만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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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속 美와의 격차 줄였어도 격변 없는 한 현재질서 못 뒤집어
세계경제체제는 어디로 가나. 이것은 새해 벽두가 되면 던지곤 하는 물음이다. 그러나 올해 이 물음은 더욱 실감이 난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간에 위상 변화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위기를 겪으면서 미 · 중 간의 국내총생산 격차가 30% 가까이 줄었다. 앞으로 중국 경제가 미국 경제 규모를 따라잡는 시기도 예전의 예측보다 앞당겨져 10년 정도 남았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의 위상 변화는 단순히 두 나라 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세계경제체제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무엇보다 현 세계경제체제가 미국의 '헤게모니'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미국의 헤게모니와 그 위에 서 있는 현 세계경제체제는 언제까지 갈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데는 아무래도 역사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19세기에는 영국이 헤게모니 국가였고 그 위에 세계경제체제가 서 있었다. 19세기 중엽 최초로 산업혁명을 완수한 영국은 압도적 생산력을 바탕으로 세계화를 주도했다.
그런 영국의 노력으로 1860년대는 자유무역의 전성기였다. 그러다가 1870년대 이후 독일 프랑스 미국 등 후발 산업화국의 등장에 따른 영국의 상대적 위상 저하와 유럽 대륙의 민족주의 대두로 보호무역이 부활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도 세계화는 꾸준히 진행됐다. 무역 증가율은 생산 증가율을 앞질렀고 자본이동도 활발했다. 20세기 초가 되면서 미국의 경제 규모는 영국의 두 배가 넘었지만,여전히 세계경제체제를 주도하는 것은 영국이었다.
결국 19세기 영국의 헤게모니는 서서히 쇠퇴하고 있었고,그에 따라 세계경제체제도 일부 혼선이 생겼지만,붕괴의 조짐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구도를 붕괴시킨 것은 1차 세계대전이다. 1차 세계대전은 19세기적 세계경제체제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그리고 한번 무너진 체제는 대전 후에도 복구가 쉽지 않았다. 그 결과 1930년대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 국제 공조가 불가능했고,뒤이은 국가 간의 불화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1차대전으로부터 시작해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세계화는 중단됐다.
2차대전 후에는 미국의 헤게모니 하에서 세계경제체제가 재건됐다. 그에 따라 세계경제는 회복돼 19세기보다 오히려 더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전(戰前)부터 선진국이었던 독일 일본 등에 이어 전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국 중국 인도 등이 세계경제체제와 통합되면서 고도성장을 이뤘다.
1960년대에는 미국의 주도 하에 자유무역이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다가 1970년대부터 미국의 상대적 위상 저하와 함께 보호무역이 대두되기 시작하고 통화금융 쪽에서도 불안이 나타났다. 그러나 19세기와 마찬가지로 20세기에도 헤게모니 국가의 상대적 위상이 낮아지는 속에서 세계화는 꾸준히 진행됐다. 생산보다 무역이 빨리 증가하고 자본 이동도 원활해졌다.
이렇게 보면 지난 3년간 나타난 미 · 중 간의 격차 축소는 그 전부터 지속돼 온 미국의 상대적 위상 저하의 연장선상에 있는 한 사건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19세기 후반 영국 헤게모니의 점진적 퇴조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상승하고 있는 중국의 민족주의도 아직은 1870년대 유럽대륙의 그것보다 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역사가 시사(示唆)하는 바가 있다면,3차 세계대전 같은 격변이 없는 한 세계경제체제가 붕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군사적 우위에 도전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고,미국의 헤게모니가 중국에 의해 교체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현 세계경제체제가 붕괴하는 것도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먼 훗날의 일일 것 같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
미국과 중국의 위상 변화는 단순히 두 나라 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세계경제체제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무엇보다 현 세계경제체제가 미국의 '헤게모니'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미국의 헤게모니와 그 위에 서 있는 현 세계경제체제는 언제까지 갈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데는 아무래도 역사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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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영국의 노력으로 1860년대는 자유무역의 전성기였다. 그러다가 1870년대 이후 독일 프랑스 미국 등 후발 산업화국의 등장에 따른 영국의 상대적 위상 저하와 유럽 대륙의 민족주의 대두로 보호무역이 부활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도 세계화는 꾸준히 진행됐다. 무역 증가율은 생산 증가율을 앞질렀고 자본이동도 활발했다. 20세기 초가 되면서 미국의 경제 규모는 영국의 두 배가 넘었지만,여전히 세계경제체제를 주도하는 것은 영국이었다.
결국 19세기 영국의 헤게모니는 서서히 쇠퇴하고 있었고,그에 따라 세계경제체제도 일부 혼선이 생겼지만,붕괴의 조짐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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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후에는 미국의 헤게모니 하에서 세계경제체제가 재건됐다. 그에 따라 세계경제는 회복돼 19세기보다 오히려 더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전(戰前)부터 선진국이었던 독일 일본 등에 이어 전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국 중국 인도 등이 세계경제체제와 통합되면서 고도성장을 이뤘다.
1960년대에는 미국의 주도 하에 자유무역이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다가 1970년대부터 미국의 상대적 위상 저하와 함께 보호무역이 대두되기 시작하고 통화금융 쪽에서도 불안이 나타났다. 그러나 19세기와 마찬가지로 20세기에도 헤게모니 국가의 상대적 위상이 낮아지는 속에서 세계화는 꾸준히 진행됐다. 생산보다 무역이 빨리 증가하고 자본 이동도 원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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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역사가 시사(示唆)하는 바가 있다면,3차 세계대전 같은 격변이 없는 한 세계경제체제가 붕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군사적 우위에 도전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고,미국의 헤게모니가 중국에 의해 교체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현 세계경제체제가 붕괴하는 것도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먼 훗날의 일일 것 같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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