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간부 K씨(47)는 며칠 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전세 보증금에다 월세까지 내는 이른바 '반(半)전셋집'을 마련했다. 자녀교육 문제로 서울 미아동에서 두 달 동안 전셋집을 찾다 실패해서다. 전세 3억원짜리 136㎡형 아파트를 보증금 1억3000만원에 월세 110만원으로 계약했다. K씨는 "전세 물건이 씨가 말라 맞벌이 수입을 믿고 다소 무리한 계약을 맺었다"며 "전세난을 국지적 문제라며 손놓고 있는 정부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해 벽두부터 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국민은행과 부동산 정보업체들에 따르면 이사 시즌을 앞두고 작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전셋값은 비수기인 11,12월에도 상승세를 지속했다. 국민은행 조사에서 작년 11월 1.4%로 연간 월 최고 상승률을 보인 데 이어 12월에도 매주 0.3%씩 뛰었다. 상승 지역도 늘어나 부동산114 조사 결과 작년 평균 전셋값 상승률은 서울 7.29%,신도시 7.16%,경기 · 인천 7.53% 등이었다.

전셋집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세입자들을 힘들게 만드는 풍속도도 나타났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기다리는 '사전예약' △전세기간을 반으로 줄인 1년 계약 △전셋값 일부를 월세로 돌린 '반전세' △월세 전환 등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금융사의 한 PB는 "노무현 정부 때 50만채에 이르던 연간 공급 물량이 이명박 정부 들어 39만여채 수준으로 준 데다 당첨 가능성이 희박한 보금자리주택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부동산 대세 하락론 등으로 전세로 눌러살려는 세입자들이 늘어 전셋값을 밀어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전셋값은 입주 물량이 크게 줄고 재개발 · 재건축을 위한 이주도 본격화할 예정이어서 강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주택 건설 규제 완화 등 전세시장 안정과는 거리가 먼 대책만 내놓고 있다. D건설 관계자는 "세입자들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전세를 원한다"며 "정부가 전세대책으로 주차장,주거 여건 등이 열악한 소형주택 공급 확대를 내놓은 것은 탁상공론"이라고 꼬집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