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리센츠 109㎡ 3600여채 가운데 전세로 나온 물건은 거의 없습니다. 월세는 20여건 쌓여 있지만 전세는 나오기 무섭게 소진되네요. 직장인으로 보이는 고객들의 상당수는 월세가 부담스럽다며 발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서울 잠실동 에덴공인 김치순 대표)

전세 비수기인 1월 엄동설한에 전세난이 가중되고 있다. 잠실 · 반포 등 서울 강남권에서는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췄고 월세나 '반(半)전세'(전세금 일부 월세 전환)만 쌓이고 있다.

◆자취 감춘 전세 물건

잠실 엘스,잠실 리센츠 등 입주 2년차 단지가 밀집한 서울 잠실 지역과 업무 · 상업시설이 몰려 임대 수요가 많은 논현 · 반포 · 역삼동 등에서는 전세난이 두드러지고 있다. 전세 물건이 귀한 데다 저금리에 대응하기 위해 보증금의 상당액을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어서다.

잠실동 대성공인 최원호 대표는 "전세금 2억~3억원을 받아야 마땅한 투자처 찾기도 힘들어 은행 이자보다 2~3%포인트 높은 월세를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집값 대출금 이자를 월세로 충당하려는 경향도 월세 계약을 늘리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입주 2년을 맞아 내달 말 계약 경신이 시작되는 판교신도시 영향으로 분당,용인의 전세난도 심해지고 있다. 분당 수내동 신라공인 박인현 대표는 "파크타운 대림 · 삼익 · 서한 · 롯데 3028채를 통틀어 융자가 많지 않은 정상 아파트가 전세 매물로 나온 것은 10여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용인 성복동 ATY컨설팅 김윤경 대표도 "용인 성복동 경남아너스빌 1020채 단지에서는 전세 물건이 하나도 없다"며 "전셋값을 매기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묻지마 전세' 등장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작년 11,12월 수도권 전셋값 상승률은 1.28%에 이른다. 2009년 같은 기간엔 0.09% 내리는 등 연말 전셋값은 보합이나 약보합을 보여왔다.

전셋값이 크게 올라 전세 물건이 뜸해지자 전셋집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강남 분당 등 전셋값 급등 지역과 서울 학군 우수 지역에서는 '전세 선취매'가 성행 중이다. 강남 · 판교 · 분당 세입자들이 많이 찾는 용인에선 집도 둘러보지 않고 중개업소를 통해 계약하는 '묻지마 계약'까지 등장했다.

김주철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봄 이사철을 앞두고 2~3개월 먼저 전셋집을 구하려는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용인 성복동 동천태양공인 박찬식 대표는 "경남아너스빌 등 입주 3년이 지나지 않은 단지가 많다"며 "집 구조는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확인 가능한 데다 도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계약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전세난 대책은 없나

전문가들은 봄 이사철이 시작되는 이달 말께 전세난이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내집 마련을 늦추려는 세입자 수요가 적지 않은 데다 수도권 입주 물량이 작년보다 37.5% 줄어든 11만5159채에 그칠 전망(부동산114 조사결과)이어서다.

김호철 단국대 도시계획 및 부동산학과 교수는 "매매 수요가 전세 수요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월세 물건이 많이 나와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전세자금 지원 확대 외에도 수급 측면에서 다각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종덕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 부동산투자부문장은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자율 조절되도록 하는 것이 전세시장에도 바람직하다"며 "규제 완화 효과를 얻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 보금자리주택 임대 비중을 확대하고 미분양 매입을 늘려 전세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연구실장은 "잠재적 매수자가 전세에 계속 머무르며 전셋값을 올리지 않도록 고가주택 거래세 중과 완화를 되살리는 등 매매시장의 물꼬를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