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28세의 최모양은 지구 건너편에 있는,이름도 생소한 중미 온두라스로 떠났다. 그녀가 다니던 봉제회사가 온두라스에 공장을 세웠기 때문에 파견근무를 자원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결국 이민 길이 될 줄은 몰랐다. 그녀는 현지에서 만난 두 살 연하의 직장 동료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두 아이도 낳았다.

그들 부부가 온두라스에서 보낸 17년은 순탄치 않았다. 열심히 일했으나 중남미 경제가 사상 최악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화폐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그들이 처음 만난 한국 회사는 경영난으로 6년 전 문을 닫았다. 남편은 또 다른 섬유공장에 들어갔지만 이 업체도 곧 망해서 인근 니카라과까지 가서 직장을 구해야 했다. 온두라스의 한국 교민은 300명이 안 된다. 그들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대부분 생활고에 허덕이며 다른 곳으로 이주할 형편도 못된다.

그녀의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온 것은 지난 10월 초.놀라서 현지 병원에 갔더니 대동맥박리증으로 시급히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이 나왔다. '마판 증후군'이라는 선천성 질환이 있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았다. 온두라스의 의료시설은 낙후됐고 그나마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있다지만 8000만원의 비용이 필요했다. 온두라스엔 의료보험제도도 없다.

부랴부랴 한국에서 치료받을 곳을 알아보았지만 대부분 난색을 표명했다. 비용도 문제지만 그 상태로 장시간 비행을 하다가는 기압 차로 인해 대동맥이 터져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선교사의 노력으로 한 달 만에 수술을 시도해보겠다는 병원과 심장수술 전문의가 연결됐다. 그녀와 남편은 '목숨을 걸고' 20시간의 비행 끝에 한국으로 왔다. 귀국 다음 날 정밀검사를 한 후 곧바로 심장 판막과 흉부 대동맥을 갈아 끼우는 9시간의 대수술을 받았다. 폐동맥 고혈압이 동반된 고위험 환자였지만,다행히 경과가 좋아 이틀 만에 일반병실로 옮겼다. 병원의 사회사업실에서 사랑의료기금을 후원해줘 병원비 일부도 지원받았다.

현재 최씨는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한국에 체류 중이다. 아이들 때문에 먼저 온두라스로 돌아간 남편은 교회에서 영세를 받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 기적이 일어났다고,절망의 나락에서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고.이는 바로 얼마 전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있었던 실화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쉽게 말하지만,우리 주변에는 예기치 않은 불행으로 낙망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2010년에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천안함에서 산화한 장병과 가족들이,연평도 주민들이,반사회적 범죄에 스러져간 희생자들과 가족들이 그랬다.

그토록 비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 주변 곳곳엔 예기치 못한 불행으로 고통받는 이웃이 너무도 많다. 그 숱한 불행에서 비켜났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또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가. 2011년 신묘년에는 절망도 희망도 함께 나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희망을 나누면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왕준 < 명지의료재단 이사장 lovehospital@kore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