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경기 북부를 휩쓸더니 강원에 이어 24일에는 인천 강화로까지 번졌다. 구제역 확산은 방역 당국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부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농가에서 방역을 철저히 하는 데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방역과 관련된 피해보상 제도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긴 측면은 없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확산되는 구제역] 구제역은 人災…기본검역 무시 안전불감증이 공포 키웠다
◆구제역 발생 원인

이번에 발생한 구제역이 처음 확인된 곳은 경북 안동으로 지난달 29일이었다. 수의과학검역원 등이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황상으로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농장 관계자를 통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게 방역 당국의 설명이다. 안동의 한 축산농장주가 구제역 발생 지역인 베트남을 다녀온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문제는 외국 여행을 다녀온 축산농장 관계자들이 입국할 때 검역검사를 제대로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외국을 방문한 축산농장 관계자는 대략 2만명이며,이 중 자발적으로 입국신고를 한 사람은 1만3000여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7000여명은 기본적인 검역조차 받지 않았다.

◆모럴해저드는 없나

정운천 한나라당 최고위원(전 농식품부 장관)은 "구제역을 막으려면 당사자인 축산농민이 경각심을 갖고 예방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예방 원칙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구제역 피해 당사자들이 심각한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구제역 피해 농가에 대해 정부가 시세에 맞춰 보상을 해주는 것도 안전불감증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정부 피해보상 규정에 따르면 구제역 등으로 살처분된 가축은 현재 시세의 100%를 보상받고 젖소는 6개월 동안의 우유값을 추가로 받는다. 살처분 농가도 사육 규모에 따라 최대 1400만원까지 생계안정자금을 지원받고 새로 가축을 들여올 경우 보상금 한도 내에서 연리 3%의 자금을 빌릴 수 있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살처분된 가축은 시가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구제역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럴해저드가 나타나고 있다"며 "제도적 신고 장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축산농가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검역을 받지 않고 구제역 바이러스를 옮긴 것으로 판명이 난 농가에 똑같이 피해보상을 하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도 책임 면키 어려워

동물 전염병을 옮겨올 가능성이 있는 국가에 여행을 다녀온 농장주 등은 반드시 신고하도록 의무화한 관련법 개정이 국회에서 처리가 미뤄진 것도 문제다.

가축 소유자 등이 전염병 발생국을 여행한 뒤 입국할 때 신고를 하지 않거나 가축 전염병을 전파시킨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은 구제역이 발생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이달 22일에야 국회 농식품위에서 의결됐다. 지난 9일 폐회한 정기국회에 상정됐던 법안인데도 국회의원들의 무관심으로 철저히 외면받았다.

정부가 구제역 확산을 차단하는 데 방심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안동에서 '구제역 의심' 신고된 한우 15마리가 전국에 유통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구제역은 감염 가축의 물집액이나 침 정액 호흡공기 배설물 등을 통해 전파되지만 감염 가축으로 만든 축산물이나 햄 소시지 같은 식품에 의해서도 옮길 수 있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해당 가축뿐만 아니라 축산품 등의 이동을 철저히 차단하는 이유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구제역이 발생했다고 사람의 이동까지 제한하기는 어렵다"며 "구제역이 사람에게는 전염되지 않지만 예방 수칙을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 구제역(口蹄疫)

foot-and-mouth disease.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우제류)에 감염되는 질병이다. 입술 혀 잇몸 코 발굽사이 등에 물집이 생기고 체온이 급격히 올라가 심하게 앓거나 죽게 된다. 잠복 기간은 통상 2일에서 14일 정도다. 저온에서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오래 생존해 최대 3주까지 길어질 수 있다.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감염된 가축은 대부분 살처분 매장된다. 치사율은 동물 종류에 따라 5~55%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구제역을 전염성이 강한 'A급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지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