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수목적회사(SPAC · 스팩)가 강화된 우회상장 규정에 다시 발목을 잡혔다. 우회상장 기업의 가치산정 기준이 기업공개(IPO) 수준으로 까다로워져 비상장기업들이 스팩과 합병해 상장할 메리트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스팩주 주가가 급등한 점도 합병 협상에 걸림돌로 작용해 20개에 달하는 스팩들은 별다른 성과없이 해를 넘기게 됐다.

◆우회상장 규제에 발목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이 우회상장 기업 가치산정 요건을 강화하면서 비상장 우량기업과의 합병을 추진해온 스팩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금감원은 부실기업의 우회상장을 차단하기 위해 비상장기업 합병가치 산정 시 적용되는 할인율을 높여 지난 6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할인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미래 이익가치에 부과되는 프리미엄이 줄어 적정가치가 낮아지게 된다.

엄태준 KB투자증권 기업금융본부 이사는 "비상장기업들이 스팩과 합병할 땐 향후 실적을 감안해 산정되는 기업가치에 프리미엄을 기대하게 마련인데 IPO 때와 스팩을 통해 우회상장을 할 때 산정되는 기업가치가 결국 같아졌다"며 "IPO가 가능한 우량 비상장사들이 굳이 스팩을 통해 상장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전했다.

스팩이 공급초과여서 비상장사들이 협상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요건 강화는 스팩들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지난 3월 상장한 대우증권스팩을 비롯 현재 상장된 스팩은 모두 20개에 달한다. IBK투자증권 KB투자증권 LIG투자증권 등 1개월 내 상장 예정인 스팩도 세 곳이나 된다.

하지만 설립 1년이 다가오는 대우증권스팩도 여전히 합병 후보기업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다른 스팩들도 사정이 엇비슷해 당장 성과가 나오기가 힘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스팩주에 투기적인 매수세가 붙어 주가가 급등한 점도 합병에 걸림돌이란 지적이다. 스팩 주가가 오르면 피합병기업 주주들은 늘어난 스팩의 시가총액만큼 자신들의 지분율이 낮아지는 것을 감수해야 해 합병을 꺼릴 수밖에 없다. 올해 스팩이 증시의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한껏 기대를 모았지만 이로 인한 주가 상승이 오히려 합병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합병 1호'는 내년 2분기께나

스팩의 비상장기업 인수 · 합병(M&A)은 내년 2분기에나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합병 이사회 결의 후 상장심사까지 최소 3개월이 걸리는 데다 내년 3월 회계연도 결산이 끝난 뒤 합병비율 산정을 위한 실사 등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스팩 담당자는 "비상장사들이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해 올해 실적이 나올 때까지 합병논의를 미루는 분위기"라며 "결산 이후에는 거래소 질적심사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가 합병 성사 시점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소 심사팀 관계자는 "통상 연말에는 이듬해 결산 때까지 상장 실질심사를 미루는 것이 관행이지만 스팩의 경우 신청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합병일정에 맞춰 심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난 10월 M&A 기대감에 급등했던 스팩 주가는 합병 일정이 늦어지면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때 공모가의 2배 이상 치솟았던 미래에셋스팩1호는 10월 말 이후 10% 넘게 하락했고,8월 상장된 HMC스팩1호도 두달여 만에 20% 가까이 밀려났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