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 없이 연탄난로에만 의지…한기에 잠들기 어려워
1월 지나면 온정의 손길도 `뚝'…"앞으로가 더 걱정"

"난로에서 조금만 떨어지면 한기 때문에 오싹한데도 방문을 꼭 열어놔. 연탄 타는 냄새가 나니까 가스 마실까봐 불안하거든…."

연탄난로에 몸을 녹이던 홍명순(63) 할머니는 16㎡(5평)도 안 돼 보이는 방 안에서도 두꺼운 양말과 외투를 벗지 못한 채 몸을 파고드는 추위에 연신 몸을 떨었다.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14일 오후 찾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마을. 판잣집이 모두 1천200여채 모여 있는 이곳의 별칭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영하 12도까지 떨어진다는 추운 날씨 때문인지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에는 이른 저녁부터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기부받은 연탄에 의지해 겨울을 나는 중계본동 독거노인(홀로 사는 노인)의 생활상을 알아보려고 기자는 홍 할머니의 집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보기로 했다.

중계본동 꼭대기의 판잣집에서 7년째 홀로 살고 있는 홍 할머니는 묵어가는 손님이 처음이라며 무척 반갑다면서도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투였다.

무척 좁아 보이는 안방에는 어울리지 않게 연탄 9장이 들어가는 커다란 난로가 불길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집안 곳곳에는 한기가 흘러 외투를 벗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서 있건 누워 있건 어디선가 꼭 찬바람이 들어와. 방 안에서도 발이 꽁꽁 얼거든. 난로가 아니라 온돌이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이불 속에서 몸을 녹이던 홍 할머니는 밤 10시께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는 "밤새 깨지 않으려면 지금 한번 갈아줘야 해"라며 난로 뚜껑을 열었다.

불이 붙어있는 연탄은 고작 4장이었다.

"얼마 전에 연탄은행에서 넉넉하게 연탄 200장을 갖다주셨어. 그래도 오늘처럼 추운 날이면 하루에 10장 넘게 갈아줘야 하니까 이걸로는 한달도 버티기가 어려워."
허리디스크 수술을 3차례나 받은 홍 할머니는 걷기조차 힘들다면서도 돕겠다고 나선 기자에게 "연탄재 흘릴 수 있으니 안된다"며 손을 뿌리쳤다.

하얗게 타버린 연탄 2장을 가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그사이 좁은 판잣집 단칸방에는 매캐한 가스냄새가 가득 차 머리가 멍해질 정도였다.

환기를 하려고 현관문을 열던 할머니는 "연탄 쓰는 게 아깝기도 하지만 이렇게 매번 갈아주는 게 힘들고 귀찮아서 추운데도 그냥 자는 날이 많아"라고 말하며 이어지는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할머니는 난로 바로 옆에 플라스틱 매트리스를 깔고 이부자리를 마련해줬다.

며칠 전 한 봉사단체에서 주고 갔다는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나무로 된 천장 너머로 제시간을 만난 집쥐 여러 마리가 찍찍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자가 몇시간 동안 몸을 뒤척이는 와중에 신기하게도 홍 할머니는 코를 골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홍 할머니는 이튿날 춥고 허리가 아프다며 오전 4시30분이 채 안된 시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야 몇년 동안 살면서 익숙해지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우리보다 못한 집에서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 많아. 산동네라 4∼5월까지는 난방이 필요한데 그때 되면 연탄을 잘 안주더라구. 앞으로가 걱정이야"라고 했다.

이른 새벽부터 부엌을 왔다갔다 하던 홍 할머니는 "차린 건 없어도 꼭 먹고 가라"며 김치와 멸치 반찬이 놓인 밥상을 내밀었다.

"추운 것도 힘들지만 사람 만나기가 어려운 게 더 괴로워요.

가끔 자원봉사자들 얼굴 보면 이야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매번 눈물이 나고 그래"라고 말하던 할머니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다.

홍 할머니 집 방문을 앞두고 빈곤층 자활지원 봉사단체인 연탄은행을 찾아봤다.

이곳에 따르면 홍 할머니네 마을 1천200여가구 중 약 600가구가 외부 지원에 의존해 연탄을 때고 있는데 이 중 상당수가 홍 할머니처럼 일정한 수입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의 독거노인이다.

매년 겨울이면 봉사와 도움의 손길이 답지하지만 한겨울인 12월, 1월만 넘어가도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지는 실정이다.

게다가 지난 5월 중계본동 일대를 고급 주거단지로 재건축하는 설계안이 확정되면서 이곳에 사는 주민은 언제 어디로 밀려나가야 할지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사회복지사 임경아씨는 "중계본동뿐만 아니라 상계동, 강남 비닐하우스촌 등 연탄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 매번 연탄기부가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도 그때마다 나눠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을 호소했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정부와 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반짝' 관심을 보일 게 아니라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이곳 주민이 장기적으로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식도 친척도 없는 홍 할머니 곁에는 긴 겨울을 함께 날 동무라곤 늙은 강아지 한 마리밖에 없었다.

하룻밤을 보내고 문을 나서려는 기자에게 홍 할머니는 "추운데 이렇게 일찍 나가야 해서 어떡해. 꼭 한번 또 놀러와"라며 `짧은 만남'을 못내 아쉬워했다.

기온이 뚝 떨어진 이른 아침에 비탈진 언덕길을 내려가는 기자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