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지난 13일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손꼽을 정도였다. 화장품과 커피점 외에는 손님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ㄱ'자로 굽어진 메인 도로변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10년간 로데오를 찾았다는 박자영씨(26)는 "중 · 고교 시절부터 로데오에 왔는데 거리가 삭막해지는 바람에 이곳에선 약속도 잡지 않는다"며 "젊은 여성들이 가로수길로 발길을 돌린 게 로데오에 타격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원래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전국 100여개 로데오 상가의 원조격이다. 1970년대 중반 압구정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후 자리잡게 된 탄탄한 중산층의 2세들이 1990년대 들어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로데오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압구정동 거주민 중 엄마는 갤러리아 · 현대백화점이나 청담동 명품거리,딸은 로데오거리의 주요 고객이 된 것이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몰락을 재촉한 첫 번째 요인은 임대료다. 공인중개사 P씨는 "메인 도로변 33㎡(10평)짜리 옷가게가 보증금 1억원,월세 400만원,권리금 1억원이며 파스쿠찌는 4개층을 쓰는데 월세 3500만원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메인 도로변에 대기업의 안테나숍이 대거 들어오면서 임대료가 급등해 자금력이 달리는 개인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점주들이 자주 바뀌면 단골손님도 덩달아 사라진다. 단골손님이 사라지는 상권은 안정성이 결정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둘째는 로데오 제품의 취약성이다. 이곳 상가의 옷들은 인근 청담동처럼 명품이 아니다. 그렇다고 보세의류를 저렴하게 팔 수도 없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고급 브랜드를 모방한 이국 지향의 무명 브랜드들을 팔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해외를 많이 다녀 잔뜩 눈이 높아진 소비자들이 금방 식상할 가능성이 큰 제품들이다. 식사 약속 때문에 로데오에 들른 최혜정씨(25)는 "같은 보세의류라도 압구정 로데오가 가장 비싸기 때문에 옷을 살 때는 다른 곳에 간다"고 말했다.

셋째,가로수길의 급성장이다. 가로수길과 로데오거리의 손님은 대체로 겹친다. 주 고객은 20~30대 여성으로 이들은 패션 수요층이다. 이들이 선호하는 옷은 톡톡 튀는 개성이 돋보이는 이국풍의 중고가 의류다. 따분한 명품 브랜드보다는 다른 사람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옷과 잡화를 즐겨 찾는 부류다.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는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대거 가로수길로 자리를 옮겼다. 가로수길과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성장과 몰락이란 정반대의 길을 걷는 이유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