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경 선수가 막판에 역전 우승을 했네요. "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이렇게 말을 꺼냈다. 16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다. 기자들은 김 회장을 만나자마자 외환은행 인수설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의 첫마디는 엉뚱하게도 이날 미국 여자프로골프대회(LPGA)에서 막판 역전 우승을 거둔 하나금융 소속 김인경 선수(22)에 대한 얘기였다.

김 회장은 이어 농담조로 "선 한번 본 것 갖고 왜들 그래?"라며 "지금까지 인수 · 합병(M&A)과 관련해서는 매물로 나와 있는 여러 은행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우리금융 인수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나돌 때마다 그는 "소문난 연애치고 성공하는 걸 보지 못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론스타와 양해각서(MOU)를 맺은 것은 직원들조차 예상치 못한 '깜짝 이벤트'였다.

하나금융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외환은행 인수는 말 그대로 은밀히 추진됐다. 회사 내에서조차 아는 사람은 김 회장을 포함해 3~4명에 불과했다.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 총회에 참석할 때도 수행비서 없이 홀로 움직였다"며 "그때 이미 최고위급 차원에서 론스타와 교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따지고 보면 김 회장은 M&A를 통해 현재의 하나금융을 일군 인물이다. 옛 보람 · 충청 · 서울은행을 차례로 합병했다. 하나대투증권도 사들였다. 굵직한 M&A 때마다 철저한 보안과 허를 찌르는 특유의 전술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도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다. 2006년 3월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국민은행에 밀렸다. 그해 6월 LG카드 인수전에서는 신한금융에 패했다.

이런 실패 때문일까. 김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에 대해 어느 때보다 조심하는 모습이다. 인수가격 협상,자금 조달 및 투자자 유치,론스타 '먹튀 논란' 해소,외환은행 직원들의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간담회를 LPGA에서 역전 우승을 일궈낸 김인경 선수 얘기로 시작한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해 보였다.

이호기 경제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