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본입찰을 3주일 앞둔 지난달 21일.취임 7주년을 맞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전 임직원에게 "마지막 힘을 모아 보자.그리고 임무를 완수하자"며 독려 메시지를 보냈다. 한 달 뒤 현 회장의 소원은 현실이 됐다. 채권단은 16일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로 평가받던 현대그룹을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현대그룹은 이날 채권단 발표 후 현대건설을 '글로벌 톱5' 건설사로 육성하고 다른 계열사들과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비전을 내놨다.

◆"모든 걸 다 걸었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5조510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자 재계와 금융권에선 '대단하고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다. 치열한 경쟁을 고려하더라도 현대건설 매각지분(34.88%)의 단순 평가액 2조9000억원에 경영권 프리미엄 30~40%를 더한 4조원 안팎에서 낙찰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현대그룹이 이보다 1조5000억원 더 써냈기 때문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풀 베팅에 나설 것으로 짐작했지만 이 정도로 세게 나올 줄 몰랐다"며 "앞으로 인수대금을 차질없이 납입해야 하는 숙제가 있긴 하지만 열세로 평가받던 자금에서 경쟁사보다 더 썼다는 게 대단하다"고 말했다.

채권단에 따르면 자금 동원력과 재무구조 등 비가격 요소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그룹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평가 비중이 65%에 달하는 가격에서 현대그룹의 점수가 높았고 결국 가격이 승부를 갈랐다. 100점 만점 평가에서 양측의 점수차는 1점 미만에 불과했다는 얘기도 있다.

현대그룹이 풀 베팅에 나선 것은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보유한 현대건설을 인수하지 못할 경우 그룹 경영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현재 우호 지분을 포함해 총 43.4%의 현대상선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가 보유한 지분은 32.29%다.

◆현 회장 "옛 영광 재건"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그룹의 대표기업이자,글로벌 톱5 종합건설사로 육성하기로 했다. 특히 현대건설 인수를 계기로 그룹 사업영역을 해운 · 인프라 · 증권업 위주에서 △글로벌 인프라 △통합물류 △종합금융 △관광 · 유통 · 교육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대북사업이 재개되면 현대건설이 북한 사회간접자본(SOC) 개발사업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로 그룹 덩치도 커질 전망이다. 자산규모는 22조3000억원,매출은 21조4000억원으로 늘어나 현재 21위인 현대그룹의 재계순위(공기업 제외)는 단숨에 14위로 올라설 것으로 그룹 측은 보고 있다. 현 회장은 "현대건설을 되찾은 만큼 그룹의 적통성을 세우고 옛 영광을 재건할 수 있도록 임직원 모두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과제는 아직 남아 있다. 대규모 인수자금 조달을 순탄하게 진행해야 하는 동시에 적지 않은 이자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남는다.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등 계열사들의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발행,국내외 투자자 유치 등을 통해 5조원 가까운 실탄을 모았으나 현대상선의 4000억원 유상증자 등은 앞으로 성사시켜야 하는 숙제다.

현대그룹은 구체적 자금조달 계획과 조건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