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존재하지 않는 보수정당
최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한나라당이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는 70% 복지시대를 열겠다"며 여당을 '중도-개혁정당'으로 전환시킬 것임을 천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에는 메이저 보수정당이 없는 것인가.

원래 보수는 처세에 능하고 시류를 잘 좇는 무리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한나라당처럼 보수정당이 집권 도중 당의 정체성을 뒤바꾸는 경우는 세계 정당 역사상 희귀할 것이다. 세계 어떤 보수정당에나 그 존재가치와 철학,이를 지키려는 정신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당 지도자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선거 여론조사밖에 없는 모양이다. 따라서 작금 서민정치 행보와 더불어 국정 지지율이 50% 이상 오르자 크게 고무됐고,이참에 과거 조강지처처럼 충실했던 보수고객을 버리기로 작정한 듯하다.

한나라당의 이번 노선 변경은 여야 접경지대의 표심을 얻자는 것이다. 그러나 잃는 것도 계산해야 한다. 이제 이 당은 기존 지지자들로부터 의심,외면에 배신까지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노 · 장년층은 과거처럼 투표소를 찾지 않을 것이다. 보수의 정통적 가치 회복에 목마른 골수 보수층은 새로운 대안을 희구할 것이며,이에 필연적으로 새 보수 세력의 부상,보수 표밭의 분열이 따를 것을 예상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 때 몸을 던져 노무현 정권 매도에 앞장섰던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을 잃을 것이다. 이 정권은 이 우군이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가를 잊은 지 오랜 것 같다. 이들은 그간 소외받아 사라졌거나 좌절에 분노하고 있다. 그 중 남은 활동가들은 지금 이 정부의 신념과 지조 부족,반시장정책 비판에 열정을 쏟고 있다. 2012 대선이 닥치면 누가 이들을 대신해 싸워 줄 것인가. 당의 새 고객인 서민계층의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한나라당을 대변해 주기를 설마 기대하는가.

필자는 금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이 오직 서민정치 덕이라고 보지 않는다. 2년반 전 광우병 촛불난동 이래 계속된 야당과 좌파집단의 거짓,선동,반민주주의 작태는 이제 그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 정권은 안정기에 들어서고 법치질서도 자리잡고 있다. 삼성 현대 등 우리 기업 활동이 눈부시고 이명박 정부는 원전을 수주하고 G20정상회의를 유치했다. 해외 언론은 한국의 성과를 연일 칭찬하고 우리 국민의 콧대는 올라갔다. 우리 국민이 이 정도도 평가 못하는가.

그런데 한나라당의 이번 탈보수 선언에서는 그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뜨내기손님만 상대하는 얄팍한 상인의 모습밖에 연상되는 것이 없다. 여론은 바람과 같을 게다. 내년 G20 선풍이 가시고 선거가 닥쳐오면 어떤 이슈로 여론이 흔들릴지,MB정부 지지율이 어떻게 부침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 국가의 책임 보수정당이라면 이런 시류에 사사건건 영합하기보다 무소의 뿔처럼 굳건히 정도(正道)를 진군함이 믿음직하지 않은가.

보수정당의 정책이슈란 무엇인가. 지금 한국 경제의 겉모습은 그럴 듯하지만 그 체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외국 투자는 오지 않고 국내 기업 투자는 부진하고 외국으로 탈출한다. 궂은 일은 안하고,떼쓰고 투정하는 국민은 늘어난다. 이 국민에게 30년 뒤에도 고용과 복지를 제공하는 길이 무엇인가. 복지비용 재정적자 국가채무 국민담세율은 향후 어찌될 것인가. 사회통합과 복지만 강조한 유럽 복지사회 모델은 지금 어떤 지경인가.

보수정당의 서민정책은 최소한 이런 정책이슈를 통찰하고 그 지식과 자신감의 바탕 위에 펼쳐져야 할 것이다. 한국의 보수정당이 이런 공력(功力)을 갖춘 친시장 정당이라면 보수 유권자들은 지금 뜻이 꺾이더라도 차기에 권토중래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한나라당이 이 역할을 거부하겠다면 한국의 건전한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 지금 대안의 보수정당을 키울 싹이 심어져야 한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