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화당국이 3일(현지시간) 지지부진한 경기를 살리기 위해 6000억달러의 국채를 매입하기로 하는 '양적완화'조치를 발표했다. 최근 중국 인도 호주가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등 유동성 죄기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한쪽에서는 돈을 풀어 통화 가치 하락과 금리 인하를 유도하고 다른 쪽에서는 금리를 올리면 고금리를 좇아 움직이는 세계 유동자금으로 인해 또 다른 환율전쟁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내놓은 성명서에서 내년 6월 말까지 8개월간 매월 750억달러씩 총 6000억달러어치의 미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FRB가 보유 중인 자산의 만기 도래분까지 포함하면 한 달 매입 규모는 약 1100억달러가 된다. 2008년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국채와 모기지 증권 등 총 1조700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매입한 데 이어 내놓은 추가 양적완화 조치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연방 적자와 민주당 공화당 간 대치 탓에 마땅한 재정정책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벤 버냉키 FRB 의장이 다시 소방수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FRB는 이날 성명서에 미국 경제 회복세가 실망스러울 정도로 느리다고 진단했다. 10%에 육박하는 실업률은 좀체 떨어지지 않고 있고 주인을 찾지 못한 주택이 1400만채에 달할 정도로 부동산 시장이 취약하다. 수요 회복 부진으로 공장 설비 가동률은 72%에 불과하다.

일본도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태세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는 4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 앞서 "경제와 물가 전망을 점검한 뒤 적절한 정책 대응을 하겠다"고 말해 추가 조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본은행의 정책결정회의 결과는 5일 발표된다.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로 무역 상대국들은 미국에 머물던 자금이 자국으로 급속히 유입돼 인플레이션과 자산 거품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근 브라질과 태국이 외국 투자 자본에 세금을 물리기로 한 것이나 중국 호주 인도 등이 금리를 잇달아 올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검토해 온 한국은행도 금리 결정 과정에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브라질 한국 중국 등 신흥국 정책당국자들이 FRB의 양적완화와 전투(combat)하기로 맹세했다"(로이터통신)는 평가까지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신흥국의 싸늘한(frosty) 반응은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불균형과 환율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성과를 낼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 양적완화

quantitative easing.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효과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을 시중에 직접 푸는 정책.사실상 제로 금리가 된 상황에서도 시중의 자금 경색이 풀리지 않을 때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