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아웃브레이크'에는 한국에서 출발한 배에 있던 원숭이가 전염병을 퍼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배 이름도 '태극호'다. 영화에서 한국인은 바보에 가까울 정도로 무지몽매하게 그려진다. 교육열이 남달라 대학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인데도 말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한국을 치명적 전염병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미개국쯤으로 알게 됐을 게다.

영화 '폴링 다운'에 등장하는 한국인은 억척스러운 잡화상 주인이다. 주인공 마이클 더글러스는 주인에게 욕을 퍼부으면서 가게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불친절한데다 바가지를 씌웠다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중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 많아서 그랬을까. 어떻든 '폴링 다운'은 제작된 지 4년 후에야 국내 개봉됐다. '007 어나더 데이'에서 한국은 한우가 아니라 물소가 한가롭게 돌아다니는 농업국가이고,북한군은 '창천동대'라고 쓰여진 예비군복을 입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레모'라는 영화속의 한국은 무술 고수들이 많은 신비의 나라다. 좀 다른 경우지만 맷 데이먼이 주연한 '본 슈프리머시'에서 킬러가 탄 EF쏘나타는 뛰어난 성능을 갖췄고 '매트릭스2-리로디드'에는 삼성휴대폰이 등장한다. 전반적으로는 현대로 올수록 이미지가 좋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일부 미드(미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국은 여전히 왜곡돼 있다는 지적이다. 배우 김윤진씨가 나오는 드라마 '로스트'에선 한강이 작은 개천 수준으로,한강대교는 개천 위의 낡은 다리로 묘사됐다고 한다. 한국 내에서 총기 소지가 허용되고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내용도 있다니 황당하다. 액션 스릴러 '24'에서 서울은 가혹한 고문이 자행되는 곳으로 그려지고,범죄수사극 'CSI'의 한인타운에선 북한 가요가 버젓이 흐른단다.

하긴 외국교과서에도 한국이 '국제원조를 받고 있는 나라'(영국),'군 출신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이탈리아),'조류독감 최초 발생국'(터키) 등으로 잘못 기술돼 있는 실정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개도국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내달엔 G20 정상회의까지 개최한다. 달라진 위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인 데도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