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현재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평균 63.22점(한국심리학회).2007년 '세계인 가치관 조사'에서 나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행복도(71.25)는 물론 세계 평균(64.06)보다도 낮다. 수치를 들먹일 것도 없다. '행복한가'란 물음에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은 까닭이다. 왜 이런가.

《행복의 정복》은 바로 이런 궁금증에 답한다. 책은 1930년 출간됐지만 조금도 구태의연하다거나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수학과 과학을 비롯,역사 철학 종교 정치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한 데다 하루 3000단어를 구사해 글을 썼다는 버트란드 러셀의 지식과 체험이 녹아든 책답게 어휘는 풍성하고 논리는 정연하다.

러셀은 187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트리니티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철학과 논리학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90세 때 쿠바 사태와 중공 · 인도 국경분쟁 중재에 나섰을 만큼 현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98세로 세상을 떠났다.

책은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가'와 '행복은 아직도 가능한가'로 나뉜다. 앞에서 불행의 원인인 권태 · 자극 · 죄의식 · 피해망상증에 대해 분석하고,뒤에선 행복의 요건인 열의 · 사랑 · 일 · 노력과 체념의 중요성을 두루 설명했다.

그는 불행을 피하려면 비슷한 일상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태는 인생을 갈증투성이로 만든다. 그러나 자극은 약물 같아 점점 더 많은 양을 필요로 한다. " 죄의식도 금물이다. "죄의식은 열등감을 가져오고 열등감은 시기와 질투심을 불러 사람을 외롭게 한다. "

피해망상증도 피하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게 실력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기 때문이란 식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그러면서 '자신의 행위가 자기 생각만큼 이타적인 것만은 아님을 기억하고,자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말고,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을 박해하고 싶어할 만큼 자기에게 관심을 쏟는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불행을 면하는 길이라고 거듭 강조한 그는 행복의 열쇠로 사물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사랑을 제시했다. "너무 강한 자아는 감옥이다. 사랑에 실패하는 것은 남녀 모두 자기를 바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지나친 조심이야말로 행복에 치명적인 걸림돌이다. "

기쁘게 일하는 것도 그가 꼽은 행복의 열쇠다. 지식인의 불행은 독자적으로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돈만 아는 속물이 경영하는 회사에 고용돼 무의미한 것들을 만들어내도록 강요당하고 있다고 여기는 데서 비롯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한 행복이나 만족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의 마지막 비밀은 체념이다.

"행복은 잘 익은 과일처럼 저절로 굴러 떨어지는 게 아니다. 세상은 질병,심리적 장애,빈곤,악의 등으로 가득차 있다. 행복해지려면 온갖 불행의 원인을 극복하는 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자면 체념도 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잘못돼 버린 하찮은 일에 신경쓰느라 좀더 유효적절하게 쓸 수 있는 정력을 낭비한다. 일을 할 땐 전력을 다하되 결과는 운명에 맡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 실로 새겨둬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