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베네수엘라 빈민가의 허름한 차고.마약과 폭력에 찌든 길거리 아이 11명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는 사업이 시작됐다. 35년이 흐른 지금 차고에서 열렸던 음악교실이 200개로 늘었고 단원 수는 30만명으로 불어났다. 문제아들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성장했고 국가 전체가 활기를 되찾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소개돼 잘 알려진 '엘 시스테마'(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에 대한 얘기다.

'한국판 엘 시스테마' 사업이 추진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내년부터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오케스트라 창단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15일 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아이들에게 총 대신 악기를 쥐어준 결과 베네수엘라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엘 시스테마'를 우리도 한번 해보기로 했다"며 "내년부터 100개 학교를 선정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소외지역 학교와 저소득층이 많이 다니는 학교,학교폭력이 만연한 학교 등을 위주로 내년 50곳,내후년 50곳 등 2012년까지 100개교를 골라 오케스트라 창단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교과부 특별교부금으로 학교당 1억원씩 주고 악기 구입과 연습실 마련 등에 쓰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도 협의해 이들 학교에 예술강사를 파견하고 인근 지역 대학 음대생들을 강사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오케스트라를 기본 모델로 하지만 학교 사정에 따라 연극반,합창단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단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 장관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시절부터 구상했던 아이디어"라며 "입시 위주에서 벗어나 창의 · 인성교육을 통해 글로벌 인재를 양성한다는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은 속성상 그룹을 이뤄 활동하고 하모니(화음)를 중시한다"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협동심과 단결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교과부는 학생들의 문화예술과 스포츠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

◆ 엘 시스테마(ElSistema)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재단.마약과 범죄에 찌든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교화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20대에 로스앤젤레스필하모닉 상임 지휘자로 취임해 화제가 된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곳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