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떠도는 얘기를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 본 뜻이 아니었다. "

이종휘 우리은행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 참석한 뒤 12일 귀국해 이렇게 말했다. 워싱턴에서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부랴부랴 진화에 나선 것이다.

이 행장은 지난 9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를 위해 하나금융과 합병하더라도 합병 주체는 우리금융이 돼야 할 것"이라며 "하나금융이 합병을 위해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의 용퇴를 카드로 쓸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회장과 관련된 신상변동 이야기가 들리더라"는 말도 했다.

이 발언이 전해지자 하나금융이 발끈했다. 하나금융은 김종열 사장 명의의 보도자료를 내고 이 행장의 공식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이 행장은 이에 대해 "시중에 떠도는 얘기를 전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두 회사의 신경전은 일단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하나금융 관계자도 "미흡하지만 사태가 더이상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두 회사 간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해석이 많다. 하나금융 고위 관계자는 "이 행장은 매사에 꼼꼼하고 신중한 스타일로 말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라며 "기자들이 묻기도 전에 본인이 먼저 (김 회장의 신상과 관련된) 얘기를 꺼냈다는 점에서 의도된 발언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행장은 왜 이런 얘기를 꺼냈을까. 우리금융이 민영화를 위해 추진해온 분산매각 방식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리금융이 주거래 기업들을 상대로 지분 세일즈에 나섰지만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어서다. 우리금융 측에서도 하나금융과의 지주사 합병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인식하게 되면서 주도권 싸움에서 김 회장의 거취 문제를 언급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하나금융에서 김 회장의 리더십은 거의 절대적"이라며 "합병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 김 회장의 리더십을 흔들어 놓으려는 전략적인 발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이 행장의 발언은 상도의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는 게 금융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호기 경제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