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원 정도면 포트폴리오까지 필요 있나요,한두 종목이면 충분하죠."

투자자문사 A사장은 자신을 '종목찍기의 달인'이라고 소개했다. 확실히 오를 종목을 찍어 '몰빵투자'(집중투자)해야지 종목 수를 늘리면 오히려 리스크가 커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10억원 이상 맡긴 고객에게만 7~8개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짜주고 그 이하는 집중투자하도록 설득한다"고 귀띔했다.

몰빵투자를 부추기는 것은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소수 종목에 집중투자하는 자문형 랩에 돈이 몰리자 펀드 판매는 아예 뒷전이다. 증권사 프라이빗뱅커 B씨는 "자문형 랩은 화끈한 수익률을 좇는 투자자들의 성향에 맞아 적극 권유한다"며 "나도 직접 자문형 랩에서 산 중소형주를 추격매수해 한 달 새 원금을 두 배로 불렸다"고 자랑했다.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도 자문형 랩과 유사한 '압축펀드'를 잇따라 출시하고,은행들마저 신탁상품을 통해 사실상 자문형 랩을 팔고 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격언이 틀린 것일까. 몰빵투자 붐은 올 들어 '자문사 7공주' 등 일부 종목이 뜰 때 몇 차례 맞긴 했다. 하지만 외국인 주도의 발빠른 순환매가 전개되자 이들의 몰빵투자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기자가 만나본 40대 직장인 C씨는 지난 4월 펀드를 환매한 자금으로 2억원을 자문형 랩에 넣었는데 6개월간 수익률이 코스피지수 상승률(8.3%)의 절반 수준인 4.4%에 그쳤다. 집중투자한 정보기술(IT)주와 화학주가 급락한 때문이다. 그는 "펀드에 실망해 자문형 랩으로 갈아탔는데 오히려 인덱스펀드보다 못하다"고 토로했다.

급기야 지난 12일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선 과열 양상을 보이는 랩어카운트가 도마 위에 올랐다. 금감원은 소액 투자자 보호를 위해 랩어카운트에 대해 기획검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집중투자도 엄연한 투자전략인 만큼 선택은 물론 투자자 몫이다. 하지만 고객에게 리스크를 충분히 알리지 않고 고수익 기대만 부풀리는 금융회사들의 영업행태는 제 발등찍기가 될 소지가 많다. 올해 펀드 환매사태도 따지고 보면 3년 전 금융회사들이 무턱대고 펀드 가입을 부추긴 결과임을 벌써 잊었나보다.

서보미 증권부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