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국회에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대한 퀴즈쇼가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문화재청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민주당의 한 국회의원과 문화재청장이 "조선왕조실록은 국보인가?"를 놓고 잠깐 실랑이를 벌였다. 양쪽 모두 《실록》이 이미 국보(國寶)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데서 일어난 일이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가운데 가장 귀중한 보물이다.

원래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시대 임금 27명의 일대기를 편년체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왕들이 죽으면 바로 그 왕에 대한 《실록》을 편찬해 후세에 남겼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태조실록》 《정종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등이 각기 다른 시기에 편찬됐고,이 모두를 아울러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이라 부른다.

한 왕조 전체, 27왕 519년 동안(1392~1910년)의 역사가 일관된 체제로 편찬됐으며, 오늘날까지 전해진 우리의 《실록》에 견줄 만한 사료는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이런 특징만으로도 《실록》은 한국 문화의 대표적 자랑거리다. 또 《실록》은 온갖 수난 끝에 살아남은 값진 유산이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거의 대부분의 《실록》이 잿더미가 됐으나,전란이 끝나자 즉시 조선왕조는 그것을 다시 인쇄해 오늘의 영광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왕조차 볼 수 없었던 《실록》이 우리 모두에게 개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왕조가 망한 1910년 이후였다. 특히 해방 후 《조선왕조실록》이 48권으로 축소영인(1955~1960년)되자 역사학자들은 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순한문으로 기록된 《실록》이 보다 대중화된 것은 한글 번역본 덕택이다. 1968년부터 1993년까지 25년 동안 《실록》은 447책으로 번역돼 나왔다. 소설가들이 《실록》을 읽으려 나선 것은 이때부터였다.

하지만 진짜 '대중의 《실록》'은 1995년 《실록》의 CD화로 시작됐다. 누구나 컴퓨터에 넣기만 하면 간단히 조선 시대의 역사를 검색해 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6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웹 서비스를 시작하자 그야말로 《실록》의 대중화는 그 절정에 이르게 됐다. 누구나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history.go.kr)에 들어가 《실록》을 검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실록》 검색은 월평균 300만건을 넘어섰고,오류 신고도 매달 평균 177건이나 됐다. 《실록》에 대한 관심이 그야말로 폭발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류 신고가 이리 많은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현재의 한글본 《실록》에는 잘못된 구석이 많다. 번역자들이 한문에는 능했으나 우리 말에 서투른 경우도 있었고,고어를 그대로 사용해 어려운 글꼴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교양인이 읽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그런 한글본을 새로 만들기 위한 수정 보완 작업이 지금 고전번역원에서 시작됐다. 이 과업은 2012년부터 5년 계획으로 추진된다고 한다. 수정 보완을 마치면 보다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한글본을 검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라도 우리는 당장 《실록》을 활용해 조선 시대로의 산보를 떠날 수가 있다. 조상 가운데 조금이라도 이름 있는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실록》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 이름을 쳐 넣어 보시라.여러분 조상에 대한 정보가 낱낱이 떠오를 것이다. 다른 역사 인물이나 사건,또는 제도 어느 것이라도 쳐 넣기만 하면 조선 시대 역사는 그것을 일일이 나열해 줄 것이다.

어찌 이보다 더 즐거운 역사 속의 산보가 있겠는가? 《실록》은 이미 역사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독자 여러분의 지적(知的) 산보에 도움이 되는 자료로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이다.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