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물놀이와 비보이가 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관람객들은 이질적인 문화가 과연 어떤 조화를 이룰지 잔뜩 기대하며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고 사물놀이의 흥겨운 가락에 몸을 맡긴 비보이들이 묘기에 가까운 춤을 선보이자 공연장 여기저기서 박수가 쏟아졌다. 각기 다른 장르의 문화가 '하나'된 모습으로 신명나게 어우러진 공연을 보자 필자의 어깨도 어느 순간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생활 곳곳에서 '하이브리드(hybrid)'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 기능이나 역할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흔히 '잡종'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용어는 생물학에 그 뿌리를 둔 개념이다. 동물이나 식물 간의 잡종 교배를 넘어 이제는 하이브리드 시대라고 칭할 정도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확대되고 있다. 전기로 움직이는 하이브리드카와 콤팩트한 DSLR 카메라 등 첨단기기부터 사물놀이와 비보이가 함께 공연하고 전통과 현대문화가 한데 섞이는 등 하이브리드 방식이 우리 생활에 자연스럽게 흡수됐다. 일각에서는 서로 다른 장르를 넘나들면서 다양하게 조합하고 혼성을 이뤄내는 모습이 부자연스럽고,이질적인 문화가 우리 전통문화와 어우러져 고유한 성격마저 모호하게 만드는 문화적 잡종화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지만,시대적인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최첨단 기술이 접목된 하이브리드 건축공법은 건축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친환경적인 기능과 에너지 절약 효과를 인정받아 신개념 건축으로 각광받고 있다. 캐나다에는 철골 콘크리트와 나무라는 서로 다른 소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건축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철골 콘크리트에 자연의 입김을 불어넣은 듯한 이 친환경 공법은 아마도 현대인들의 메마른 정신과 신체를 편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국내 건설회사들도 하이브리드 방식을 적용한 친환경 주택산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하이브리드 LED 가로등,하이브리드 환기시스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조만간 생활공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가 관여하는 초고층 빌딩 사업과 관련된 연구 · 개발 과제에도 하이브리드에 관한 것이 있다. 하이브리드 기법이 적용된 초고층 복합빌딩은 친환경적인 거주환경을 갖추고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절약에도 혁신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경과 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진 글로벌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다양한 업종과 장르에서 하이브리드 방식에 대한 연구와 개발은 더 활발해질 것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접근,그리고 첨단기술에 의해 창출되는 문화적 · 물질적 풍요로움이 앞으로 우리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된다.

이필원 < 초고층복합빌딩사업단장 pwlee@rist.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