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무선 인터넷 서비스 등을 사용,소유자에게 요금을 물게 하는 피해를 입혔어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현행법상 휴대폰을 무단 사용해 이익을 얻은 부분에 대한 별도의 처벌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다른 사람의 휴대폰으로 이용료 5만4000원어치에 달하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 등을 이용한 혐의(컴퓨터등사용사기)로 기소된 박모씨(33)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형법상 처벌 대상인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권한이 없는 자가 정보를 입력 · 변경해 이익을 얻는 행위'에 휴대폰의 통화 버튼이나 인터넷 접속 버튼을 누르는 행동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용자 신원 확인 절차 없이 버튼을 누르면 서비스가 제공되는 특성상,휴대폰 이용은 형법에 규정된 '정보 혹은 명령의 입력'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통화 등 버튼을 누르면 기계적으로 일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휴대폰은 입력된 명령에 따라 정보를 처리하는 기기가 아니라는 것.

박씨는 2006년 9월 타인의 휴대폰을 훔친 혐의로 상습절도죄로 처벌받았고,이후 무선 인터넷 등 통신 서비스까지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 추가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동전화서비스 가입 계약상 휴대폰 서비스는 가입자 등에게 제공되는 것이므로 남의 휴대폰 버튼을 눌러 서비스를 이용한 행위는 권한 없는 정보 입력에 해당된다"며 박씨를 기소했다.

1심과 2심은 박씨가 무단사용으로 재산상 이익을 얻은 점은 인정되나 적용할 수 있는 처벌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