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와 함께 '재산 50% 이상 기부 서약 운동'을 벌이고 있는 워런 버핏은 수백억달러에 이르는 재산의 99%를 내놓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재산의 1% 이상을 쓴다고 해도 더 행복해지지는 않겠지만 나머지 99%는 다른 사람들의 건강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 이른바 '1% 대 99%의 행복론'이다. 이 운동에는 40여명의 거부가 동참키로 했고 약정 금액만 1500억달러(약 176조원)를 넘었다.

부동산 재벌 엘리 브로드 부부는 기부 서약을 한 다음 "거액을 기부하는 데 대해 누구는 기회라 하고 누구는 책임이라 하지만 우리는 이를 특권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자산운용사를 통해 부를 쌓은 톰 테일러 부부는 "위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주고 용서할 때 얻는 능동적 기쁨이 소유하고 차지할 때 얻는 수동적 기쁨보다 크다"는 성 프란체스코의 말을 기부의 이유로 인용했다. 나눔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돈을 내놓는 것만 기부는 아니다. 재능이나 지식을 나눠주는 것도 훌륭한 기부다. 창궐하던 소아마비를 퇴치하기위해 200여 후보 물질을 실험한 끝에 1955년 백신을 개발한 조너스 소크는 엄청난 돈을 챙길 수 있었으나 제조법을 무료 공개했다. 주변에서 만류하자 소크는 "태양에도 특허 신청을 하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성냥을 발명한 존 워커나 라듐을 발견한 퀴리 부부도 특허를 내지 않음으로써 사회에 공헌했다. X-레이를 발견한 빌헬름 뢴트겐도 상업적 활용을 거부한 채 가난하게 살았다.

전 · 현직 최고경영자들이 경영 노하우와 전문지식을 나눠주는 법인 'CEO 지식나눔'을 사재를 털어 만들었다. 조영철 전 CJ홈쇼핑 사장,김종훈 한미파슨스 회장,노기호 LG화학 고문,박종식 전 삼성지구환경연구소장,이방주 JR자산관리 회장 등 30여명이 주인공이다. 무료봉사를 하되 수익금이 생기면 법인 운영비로 충당하고 남을 경우 사회복지 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란다.

서구의 기부문화는 '부는 신이 잠시 맡겨 놓은 것'이란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에게도 두레 품앗이 계 등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공동체 정신이 흐른다. 험난한 근 · 현대를 거치며 희박해졌지만 그 정신을 살려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CEO 지식나눔이 그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