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창지투-北라진 경협벨트 조기 구축될 듯

지난 5월 중국 방문 이후 4개월여 만에 다시 중국을 찾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이번 방중 기간 동북지역에만 머물렀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이 위기에 처한 북한의 경제난 해결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방중 기간 접경한 중국 동북지역과의 실질적인 경제 협력을 모색하는데 주력했던 것으로 풀이되는 이유다.

북한은 지난해 화폐개혁 이후 경제 사정이 극도로 악화됐지만 돌파구를 찾을 내부 동력마저 없는 상황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더욱 강화되는 쪽으로 흐르면서 중국 말고는 의지할 곳도 없어 중국의 지원과 경제 협력이 절실한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이 추진하는 대규모 두만강 유역 개발 프로젝트인 '창지투(長吉圖.창춘-지린-두만강) 개방 선도구' 건설을 고리로, 북-중 경협벨트를 형성, 성장 동력을 모색해 왔다.

이와 관련 이번 방중 기간 중국과 실질적인 경협 방안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 방중 루트였던 신의주-단둥을 마다하고 시설이 노후한 만포-지안-지린-창춘 철도를 이용했고 주 방문지를 지린(吉林)성으로 삼았던 데서도 이번 방중 의도가 엿보인다.

지린성은 북한과 접해 있으며 중국 중앙정부가 동북 노후공업기지를 개조하려는 동북 진흥책의 하나로 추진하는 창지투 개방 선도구 사업이 펼쳐지는 곳이다.

창춘에서 두만강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단일 경제 벨트로 묶어 동북아 물류 거점으로 삼겠다는 이 개발 프로젝트는 북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창지투 개방 선도구가 성공하려면 북한을 통한 동해 뱃길 확보가 선결 과제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북한에 가로막혀 해상 진출이 봉쇄된 이 지역이 진정한 물류 거점으로 거듭나고 풍부한 지하자원을 남방으로 운송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항구를 이용한 해상 항로가 개척돼야 한다.

중국이 2008년 라진항 부두 사용권을 확보한 데 이어 최근엔 청진항 임대권 차지를 위해 공을 들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북한 역시 현재의 경제난 해결을 위한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어서 라진항 개발에 의욕을 보여왔다.

중국 개혁개방의 불씨를 남방의 작은 어촌 마을 선전(深천<土+川>)에서 지폈듯이 라진항을 '북한의 선전(深천<土+川>)'으로 삼아 성장 동력을 찾으려 했던 것.
올 초 라선시를 자치권이 대폭 부여되는 특별시로 승격하고 지난 5월 방중 당시 가장 먼저 라진항의 '롤 모델'이 될 다롄(大連) 제3부두 개발 현장을 찾는 등 김 위원장이 각별한 관심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북한이 라진항 사용권을 중국 기업에 부여하고 중국 당국도 지난 5월 훈춘-라진-상하이 해상 항로를 승인했음에도 훈춘-라진 경협 통로는 지금껏 가동되지 않고 있다.

라진항 사용권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중국이 무상 건설하기로 한 훈춘 너머 북한의 원정리-라진 구간 고속도로는 착공조차 안 되고 있다.

비포장 도로에 험한 산길이 많은 이 구간에 고속도로가 건설되지 않는다면 대규모 물자 수송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라진항을 통한 해상 물류 운송도 어렵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속도로 확보가 훈춘-라진 통로 활성화의 관건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고속도로 건설이 지지부진, 훈춘-라진 통로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이유는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액 배분을 둘러싼 북-중간 갈등 때문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기간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이런 갈등을 말끔히 정리, 훈춘-라진 경협 통로와 라진항의 조기 활성화를 꾀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역시 창지투 선도구의 성공적인 개발을 위해서는 북한의 협력이 절대적인 데다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해왔던 만큼 창지투-라진 간 북중 경협 벨트의 조기 구축에 적극성을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지난 5월 방중 당시 중국의 개혁 개방 권유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북한이 중국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약속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양측이 원칙적으로 합의하고도 실현되지 않는 훈춘-라진 해상 통로의 조기 개통은 물론 더 나아가 투먼-청진 통로 개척 등 북-중 변경지역의 다양한 경협 벨트 구축도 심도있게 논의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을 계기로 창지투 선도구와 라진을 잇는 거대한 북-중 경제벨트 구축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헤이룽(黑龍江)성을 방문한 이유는 선친의 항일 유적지를 순례하려는 의도 말고도 이 지역의 선진 농업을 시찰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헤이룽장은 세계 3대 미곡 창고이자 중국 최대 콩 생산지다.

그런 만큼 재배 기술이나 비료 등 원자재 생산 시설 수준이 높다.

해마다 반복되는 식량 부족으로 곤란을 겪는 북한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헤이룽장의 선진 농법과 원자재 생산 설비를 시찰, '한 수' 지도받고 싶어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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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pj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