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재범 위험성 감안해 무기징역 선고

인격장애가 있는 20대 남성이 행인을 이유없이 살해했다가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될 운명이 됐다.

지난 2월18일 0시40분께. 서울 신당동 집에 막 돌아온 A씨는 신발에 묻은 눈을 털다 "악" 하는 외마디 비명을 들었다.

고개를 돌린 그는 김모(31.여)씨가 힘없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뛰어나가 신고했다.

김씨는 등을 흉기에 깊게 찔린 상태였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폐쇄회로(CC) TV를 분석, 검은색 옷을 입은 한 이모(29)씨가 김씨의 뒤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줬고 A씨는 `눈을 털고 있을 때 비명이 들린 것을 보면 이씨가 범인인 것 같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사건 직후 현장 인근에서 지하철을 타려다 열차 운행이 종료돼 다른 곳으로 달아나는 모습도 CCTV에 포착됐고, 결국 용의자로 지목돼 검거됐다.

그는 중고교 시절에는 `왕따'를 당했고, 군대에서는 선임병의 괴롭힘을 못 이겨 탈영한 전력이 있으며 제대 후에는 살인 미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인물이었다.

지능이 평균 이하인 그는 부정적 평가에 과민 반응을 보이고 대인 관계를 회피하는 등 종류를 특정할 수 없는 인격장애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범행을 부인하던 이씨는 거듭된 신문에 자백했지만, 재판에 넘겨진 이후 법정에서 다시 진술을 번복해 `진실 게임'이 시작됐다.

그는 `자백하면 누나가 결혼을 할 수 있다'고 경찰이 회유했다며 버텼지만, 확실한 증거 앞에서 진실을 감출 수는 없었다.

사건 당시 그가 입은 바지에서 혈흔이 발견됐는데 유전자 감정 결과 김씨의 것으로 확인됐으며 김씨가 찔린 칼이 이씨가 전날 식도를 구입한 할인마트에서 파는 것과 동일한 종류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가 마트에 가기 전 인근 피자집에서 식사하고 과도를 두고 나와 되돌아갔지만 `칼을 찾느냐'는 주인의 말에 당황해 그냥 갔다는 진술까지 있어 무죄를 주장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이씨가 바지의 혈흔이 자신의 것이라고 변명할 뿐 혈액이 묻은 경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살인을 한 것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15일 밝혔다.

이어 "`묻지마 살인'을 한 것은 매우 비난받을 일이고 복역을 마친 뒤 불과 1년 만에 살인을 하는 등 재범의 위험도 크다"며 "다만 인격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범행한 점 등을 고려하면 생명을 박탈하기보다는 사회에서 영구 격리해 반성하게 하는 것이 상당하다"며 무기 징역을 선고했다.

이씨와 검찰은 모두 항소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