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조합인가를 받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단지의 아파트 두 채를 갖고 있는 A씨는 지난달 한 채를 팔러 중개업소에 들렀다 충격을 받았다. 법이 바뀌어 자신이 매도하는 아파트를 구입하면 입주권을 받을 수 없어 팔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넓은 아파트에 입주하려고 융자를 끼고 한 채를 더 장만한 뒤 살던 집을 팔려고 했는데 낭패를 보게됐다"며 "3~4년 뒤 관리처분 시점에 현금으로 청산받을 때까지 대출 이자를 내야하는데다 종부세까지 물게 돼 분통이 터질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법제처가 '수도권 일대 재개발 · 재건축 사업장 내 다주택 조합원들이 조합인가 이후 매도한 주택에는 분양권이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혼란이 일고 있다. 수도권 일대 300여개 사업장은 다주택자들의 반발로 인한 분쟁 및 소송 대란으로 사업차질도 우려된다.


◆사실상 집을 팔 수 없게 된 다주택자

3일 국토해양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법제처는 지난달 12일과 지난 2월22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제19조1항3호를 근거로 '조합인가 이후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의 재개발 · 재건축 사업장에서 2채 이상의 다주택자들이 한 채 이상을 매도할 경우 이를 매입한 사람은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없다'고 유권해석했다. 제19조1항3호는 무분별하게 조합원 자격이 늘어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지난해 8월7일 시행됐다.

이에 대해 서울시와 법률전문가들은 "법제처가 조합원 자격을 아파트 분양권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 유권해석은 잘못"이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도정법 48조에 분양권에 대한 별도제한 규정이 있는 만큼 조합원 자격과 분양권은 엄연히 다르다는 지적이다.

법제처 유권해석으로 조합인가를 받은 수도권 재개발 · 재건축 사업장의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 길이 사실상 막혔다. 다주택자가 파는 주택에 분양권이 없으면 누구라도 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들은 조합원 분양 신청 시점인 '관리처분 기준일'에 현금 청산하는 방식으로 보유 주택을 처분할 수밖에 없게 된다. 통상 조합인가 이후 관리처분까지는 3년 정도 걸린다. 대출을 안고 있는 다주택자라면 '울며 겨자 먹기'로 이자를 내야 하는 셈이다.

분양권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집을 처분했다면 사정은 복잡해진다. 거래 당사자 간 분쟁은 물론 '조합원 자격=아파트 분양권'인 만큼 주택을 매도한 사람이나 이를 구입한 사람이 조합원 자격을 주장하며 줄소송을 낼 가능성이 크다.

◆300여개 사업장 소송 · 분쟁 불가피

법제처 유권해석이 알려지면서 재개발 · 재건축 사업장마다 혼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시 주거정비과와 구청 관련과에는 재개발 · 재건축 조합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둔촌주공단지에서는 '다주택 보유자회'가 결성돼 국토부와 서울시,강동구청 등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재개발 · 재건축 사업이 전면 중단되는 파국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법제처 유권해석이 적용되는 조합인가 이후 사업장은 서울에만 둔촌주공,고덕주공,서대문구 북아현3구역,장위뉴타운 등 250여개에 이른다. 수도권에서도 70여개 사업장이 조합인가를 받았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