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후 수출기업 '천당', 내수기업 '지옥'
고환율이 양극화 초래..서민도 물가부담에 짓눌려
수출.내수기업 모두 키울 수 있는 적정 환율은?


"국제 원자재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환율까지 높은 수준이어서 매출은 늘었지만, 실제론 남는 게 없습니다."

경기도 포천에서 아크릴을 원료로 쟁반, 수저통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어 국내에 파는 김용석 씨는 "수출기업들은 환율 덕을 봐 실적이 더 좋아졌겠지만, 우리 같은 내수기업은 환율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봤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5년 전만 해도 t당 170만 원에 사오던 원료를 지금은 배 가까이 오른 300만 원에 사온다"면서 "원료 값 자체가 오른 것도 있지만, 고환율 탓에 값이 더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시장에서 쟁반 가격이 5년 동안 얼마나 더 올랐겠느냐"며 "원자재를 직접 수입해서 1차 가공하는 대기업들은 원료 값 상승분과 환율 상승에 따른 부담을 즉각 반영하지만, 우리같이 시장에 물건을 공급하는 곳은 오른 원료 값을 제품 가격에 바로 반영할 수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미국에서 건강음료를 수입해 국내에 유통.판매하는 엘에스원(LS1)의 강남진 대표도 환율 때문에 매일 골치가 아프다.

강 대표는 "고가의 원료를 직접 수입하는데다 관세도 50% 수준으로 물어야 해, 달러로 물건값을 결재하는 우리는 환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에서 원자재 값은 큰 변화가 없지만, 고환율로 수입 가격이 크게 뛰었다"면서 "지금도 환율이 조금 높은 수준에서 오르내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환율이 1천600원 수준까지 폭등했을 땐 정말 끔찍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강 대표 역시 환율이 상승하면서 따라 오른 원료 값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바로 적용하긴 어렵다.

제품 가격을 조금만 올려도 매출이 바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코엑스(COEX) 2층 상사전시장에 150여 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데 수입.유통업체도 많다"면서 "최근 1~2년간은 고환율에 환율 변동도 심해 수입업체들이 말도 많고 많이 힘들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환율이 조금 더 하향 안정세를 유지되길 바라는 게 2층에 모인 대부분 업체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 수출-내수기업 체감경기 양극화


최근 수출 대기업들이 연일 사상 최고의 실적을 거뒀다며 경기회복을 선언하고 있지만, 내수 중소기업들은 경기회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매달 작성해 발표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이런 격차를 수치로 보여준다.

BSI는 기업들이 느끼는 경기를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100 이상이면 경기가 좋다고 느끼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 뜻하고, 100 이하는 그 반대를 의미한다.

올해 전체 제조업 업황 BSI는 93(1월)→94(2월)→99(3월)→103(4월)→103(5월)→105(6월)로 3월 이후 3개월 연속으로 100을 넘기며 기업들의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통계를 자세히 보면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간 희비가 엇갈린다.

올해 1~6월까지 수출기업의 BSI는 94→100→108→113→109→117로 줄곧 오름세를 기록하며 100을 넘겼던 반면, 내수기업의 BSI는 92→89→92→97→100→97로 5월 한차례를 제외하면 줄곧 100을 밑도는 수치를 보였다.

1월 이후 BSI 격차도 6~11포인트 차이로 양극화가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대기업들 '고환율'에 환호


수출기업과 내수기업들이 경기의 온도 차이를 느끼는 중요한 원인으로 다양한 원인이 거론되지만, 주로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른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당시 달러당 947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평균 1천276원으로 329원이나 올랐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환율 개입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론 경제 관료들의 구두개입과 실제 시장개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환율이 오르면서 수출기업들은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간 반면 해외에서 원자재를 사와야 하는 내수기업들은 지옥으로 떨어졌다.

대기업 오너와 임직원들은 "경제를 아시는 분이 대통령이 되면서 별로 한 일도 없는데 회사에 돈이 쌓여 주체를 못하겠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강만수 대통령경제특보도 지난해 10월 기업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수출 대기업의 좋은 실적이 환율효과와 재정효과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기업 585곳의 2007-2008년 손익을 바탕으로 환율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고환율로 혜택을 본 기업은 16곳에 불과했고 나머지 241곳은 손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혜택을 본 곳은 1차 금속, 자동차, 전자부품·컴퓨터 산업 등 3개 분야에 속하는 수출 대기업들이었고 섬유, 목재·펄프, 의료정밀·기타기계 산업 분야 등 나머지 전 분야의 수입 내수기업들의 기업 가치는 하락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결국 대기업에는 수출보조금을 주고 내수 중소기업에게는 수입 관세를 물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 중산층은 실질소득 감소로 '신음'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이 40%가 넘는 우리 경제구조상 고환율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소비자 물가의 상승을 가져온다.

예를 들어 환율이 오르면 휘발유를 수입하기 위해 국민들은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고 그만큼 가계 실질소득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수입물가 상승이 국민의 가처분 소득을 감소시키고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약화되면 내수 경기가 침체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고환율 정책을 쓰면 경상수지 흑자를 볼 수 있겠지만, 오히려 경제위기를 불러올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환율을 국가에서 통제한다는 이미지를 주는 것 또한 대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우리 원화가 주요 경쟁국 중에 가장 많이 절하된 상태"라면서 "환율을 낮추면 수입 원자재의 원화 표시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환율을 조금 낮추면 내수 진작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정부의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게 돼 서민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d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