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국제카르텔.LPG담합에 소비자 집단소송

전세계 21개 항공사의 운임담합과 국내 최대의 LPG(액화석유가스) 가격담합 사건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비자 집단소송'이 잇따라 제기될 예정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항공사 운임 담합 사건은 우리나라가 미국, 유럽연합(EU)의 경쟁당국과 공조해 세계 최초로 국제카르텔 담합 행위를 처벌한 최초의 사건인데다 LPG담합은 과징금 규모가 역대 최대 규모에 달했다.

그런데다 두 사건을 대상으로 한 소송은 일반 소비자가 대규모 담합사건을 대상으로 내는 첫 집단소송이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증권 분야에서만 집단소송이 인정되고 있어 이들 사건에 대한 향후 법원의 판단이 담합사건에 대한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담합으로 인한 피해..소비자에 배상해야"
항공사 국제카르텔 담합사건은 지난 5월27일 전세계 16개국 21개 항공사가 우리나라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천195억원을 부과받은 사건이다.

당시 공정위는 21개 항공사들이 99년부터 2007년까지 유류할증료를 신규 도입하거나 변경하는 식으로 항공화물운임을 담합했다고 밝혔다.

국제 담합에 가담한 항공사는 국적사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2곳과 일본항공, 타이항공, 에어프랑스, KLM항공, 루프트한자 등 15개국 외항사 19곳이다.

LPG 담합사건은 E1, SK가스,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간 LPG(프로판, 부탄) 판매가격을 담합해 지난해 12월2일 과징금 6천689억원을 부과받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휴대전화용 반도체칩 제조업체인 퀄컴이 2009년 7월 리베이트 제공 등 불공정거래 혐의로 내게 된 과징금 2천600억원의 기록을 깨고 최대 과징금 사건이라는 오명을 안았다.

항공사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정률 소속 이대순 변호사는 "21개 항공사들이 무려 9년간 유류할증료 도입 등을 통한 담합을 통해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겼다"면서 "이로 인해 소비자인 화물유통업체의 피해가 적지 않은 만큼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산 소재 운송업체인 TCE㈜ 등 2개 업체로부터 소송을 의뢰받은 이 변호사는 21개 항공사를 이용했던 국내 운송업체를 대상으로 추가로 집단소송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통상 경쟁 당국이 부과하는 과징금은 부당이득의 2∼3%에 불과하다"면서 "따라서 손해배상 규모는 실제 부당이득 규모에 해당하는 `과징금의 30배'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과징금이 1천195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청구액이 3조5천850억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손해규모 산정어렵고 원고모집 쉽지 않아"
하지만 이 변호사의 주장과 달리 담합으로 인한 피해규모를 산정하는게 어려워 청구금액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일 가능성이 크다.

LPG 담합 사건 당시 공정위는 "LPG 공급회사의 관련 매출이 2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 가운데 부당이득 규모는 정확하게 산출하기 어렵다"면서 "따라서 소비자 피해규모도 추정하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LPG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한누리 소속 나순철 변호사는 "소비자 집단소송은 전례가 없는 사건이지만 일단 손해배상액 일부를 청구한 뒤 소송 과정에서 피해규모에 대한 감정결과에 따라 금액을 조정해 청구하게 된다"고 말했다.

피해규모를 따지려면 경쟁당국의 담합 조사내용이 결정적 단서로 작용한다는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 공정위는 "담합과 무관한 기업비밀은 집단소송 원고측에 넘겨줄 수는 없지만 담합 사건 자체와 관련된 자료는 협조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집단소송의 파괴력을 높이려면 다수의 원고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선 항공사 담합 사건은 소비자인 국내 화물운송업체가 항공사와의 관계에서 을(乙)의 입장이어서 향후 불이익을 우려해 소송에 참여하는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이들 항공사를 이용해 주로 화물을 운송하는 업체들이 무역협회 소속 화주협회를 구성하고 있고 회원도 5만8천여개에 달한다"면서 "하지만 대형 항공사들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해 향후 불이익을 우려한 업체들이 소송 참여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LPG 사건은 원고 모집이 다소 순탄한 편이다.

나 변호사는 "일반시민 27명외에 택시공제조합도 원고로 참여하고 있어 늦어도 이달말께는 법원에 소장을 접수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소송만 인정..법원 판단 주목"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2005년 1월1일부터 주가 조작이나 분식 회계, 허위 공시 등으로 기업이 투자자에게 피해를 줬을 때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낼 수 있게 됐다.

특히 일부 투자자들이 승소했더라도 나머지 투자자도 구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증권 분야에서만 집단소송이 허용될 뿐 다른 분야는 관련 규정이 아예 없다.

집단소송이 활성화한 미국은 일부 소비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내 승소하면 나머지 피해자는 물론 유사 사건 관련자들까지 모두 구제를 받을 수 있는데다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액 때문에 기업들로선 `담합=패가망신'이라고 여길 정도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소비자 집단소송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 변호사는 "증권외 다른 분야의 집단소송 법규가 없기는 하지만 현행 민법은 `다수 당사자 소송'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면 소비자 집단소송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국내에서는 징벌적 성격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게 관례여서 소비자 구제가 쉽지 않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담합과 폭리에 따른 국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소비자 집단소송을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강원 기자 gija00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