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시절 가장 우려했던 것 중의 하나는 내가 공부하는 전공영역이 졸업 후 우리나라로 돌아갔을 때 유용성이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소비자경제학이 다소 생소한 분야였고,경제학의 일부분이냐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공급자 중심의 경제구조에 익숙해 있어서 소비자 혹은 수요자 관점에서 경제현상을 본다는 것은 매우 드물고 힘든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경제활동이 활발해져 시장에서 소비자행동이 다양해지고 분화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필요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넘쳐나는 상품들을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욕구가 제품에 반영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등 소비자들의 역할과 위치가 매우 중요해졌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소비자문제는 경제학이라는 단일 학문의 접근방법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책학,법학,심리학,행동과학,소비자교육 등 다학제적이며 시장 중심의 소비자 경제학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화했고,기업은 소비자에 대해 깊이 알지 않으면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시장에서도 소비자 관련 전공자와 연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고,특히 금융시장 또한 금융소비자에 대한 이슈가 현재 블루오션으로 떠올라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현재 금융당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금융소비자 중심의 금융감독 패러다임 정착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소비자는 금융회사보다 정보가 부족하며,금융상품을 구입할 때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해 잘못된 판단을 해 많은 돈을 잃기도 하고,금융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비자들을 돕기 위해 금융감독원은 적극적인 정보제공과 금융교육,민원상담,분쟁조정 등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금융분쟁이 생겼을 경우 소비자들이 소송을 통하지 않고도 분쟁조정을 통해 판결이나 중재판정에 못지않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분쟁조정기구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민원서비스는 공공재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접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기에 민원발생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특이 혹은 악성민원은 이러한 소비자시대의 발전을 막는다. 민원 담당직원에게 전화로 욕설을 퍼붓거나,폭행을 하거나,같은 민원을 매일 접수하거나,기물파손,협박 등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일은 선의의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런 민원인까지 보호해야 할 대상인지 여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문정숙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mooncs@s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