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축구대회는 `축구 종가' 잉글랜드에게 `악몽의 월드컵'으로 기억될만하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프로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를 운영하며 천문학적 액수의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 선수들로 명단을 채웠음에도 잉글랜드 대표팀은 대회 내내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일관했다.

28일 숙적 독일과 맞붙은 16강전은 물론 조별리그에서도 지지부진한 경기로 탈락 위기에 몰리는 등 `이름값'을 무색케 하며 국내외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한심한 경기력..`스타'의 부진 = 잉글랜드는 본선 조별리그부터 상대적으로 약체로 평가받은 미국, 알제리 등과 답답한 경기운영 끝에 무승부를 기록하는 한심한 경기력으로 빈축을 샀다.

막판에 슬로베니아에 1-0으로 승리해 간신히 16강행 티켓을 쥐었지만 조별리그 3경기에서 고작 2골만 성공시켰다.

유럽예선에서 경기당 3골이 넘는 34골을 기록하며 9승1패로 당당히 1위에 올랐던 것과 전혀 딴 판이었다.

그나마 제 구실을 하던 수비라인도 16강전 상대 독일에게는 잇따라 허점을 드러냈고 고질적으로 지적돼 온 프랭크 램퍼드(첼시)와 스티븐 제라드(리버풀)의 포지션 중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미드필드의 조직적인 플레이도 살아나지 못했다.

특히 최전방 스트라이커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부진이 뼈아팠다.

`스트라이커 부재'가 항상 문제였던 잉글랜드는 소속팀과 월드컵 유럽지역예선에서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여준 루니에게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루니는 독일과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에 발이 묶여 슈팅 2개만 기록하는 등 대회 내내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득점에 실패했던 루니는 남아공 대회에서도 `골 가뭄'을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본선 8경기 무득점'이라는 기록으로 스트라이커로서 체면을 구겼다.

◇영국민ㆍ언론 분노..`실력이 모자랐다' = 영국 언론 축구 전문가,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16강전에서 잉글랜드의 탈락에 실망하면서도 심판보다는 감독과 대표팀에게 분노를 뿜고 있다.

오심으로 골을 인정받지 못한 것은 억울하지만 실망스러운 경기력의 잉글랜드에 비해 독일이 확실한 우위를 보인 만큼 완패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데일리 메일은 "잉글랜드팀은 엉망진창이었다.

전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서툴렀고 잘 훈련된 독일에 비해서 선수 개개인의 능력도 떨어졌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가디언은 `영국의 황금시대가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잉글랜드는 다른 결과가 가능했다고 주장할 자격이 없다.

독일 선수들이 춤추듯 그라운드를 누비는 동안 잉글랜드 선수들은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고 적었다.

이 신문은 또 "1930년대 이후 가장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독일팀의 플레이는 활기차고 신선했으며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며 "경험이 더 풍부한 잉글랜드 팀에서도 수년간 찾아볼 수 없었던 요소들이다"라고 평했다.

잉글랜드 팬들도 `오심으로 도둑맞은 램퍼드의 골은 화나지만, 더 잘할 수 있었다', `이길 자격이 없다.

늙고 이빨 빠진 사자가 돼버렸다', `카펠로 전술의 실패' 등의 반응을 내놓으며 오심보다는 감독과 선수들을 탓했다.

◇감독과 선수는 "오심에 졌다" = 파비오 카펠로 감독과 선수들은 경기의 분수령이 된 잉글랜드의 두번째 골이 오심으로 무효처리된 데에 더 비중을 뒀다.

카펠로는 "2-2 동점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했고 우리는 멋지게 골을 넣었지만 심판들은 그게 골인지 아닌지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며 "골이 오심 처리되지 않았다면 경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무효처리된 골을 넣은 프랭크 램퍼드(첼시)도 "명백한 골이었다 4만명 관중이 모두 알았지만 오직 주심과 부심 두 사람만 몰랐다"며 "그 골이 경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때 2-2 동점을 만들어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실망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조 콜(첼시)은 "충격적인 결과지만 문제는 단순하다.

최선을 다했어도 이길 만큼 잘하지 못했을 뿐이다.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그전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따져봐야 한다"
주장 스티브 제라드도 "두 번째 골의 오심이 경기에 영향은 미쳤지만 그게 1-4 대패의 핑계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프리미어리그가 `독(?)' = 잉글랜드가 이름값에 비해 월드컵과 유럽선수권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맥을 못 추는 것은 세계 최고 프로축구 리그로 꼽히는 프리미어리그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선수 하나하나의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를 하나의 팀으로 묶어내는 데에 실패하면서 조직력에 문제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빅리그 중 가장 격렬한 경기를 하는 프리미어 리그 선수들이 피로 누적과 부상으로 월드컵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경기력을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리오 퍼디난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잉글랜드 선수뿐 아니라 독일 미하엘 발라크, 나이지리아 존 오비 미켈,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로그바(이상 첼시) 등 각국 간판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한 데에서도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 감수하는 위험 부담을 잘 알 수 있다.

독일 축구영웅 프란츠 베켄바워 역시 16강전 직전 독일 대중지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잉글랜드 선수들은 분데스리가 선수보다 훨씬 많은 경기를 뛰기 때문에 주요 국제대회 시기가 되면 이미 지쳐버린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밖에 리그가 다국적화되면서 각 팀들이 전 세계에서 최고의 선수를 긁어모으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자국 선수가 자랄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비판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inishmor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