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 한국 축구 대표팀이 17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기고 마침내 원정 16강 진출 숙원을 이뤘다.

지난 2006년 대회까지 모두 7차례 월드컵 무대를 밟은 한국의 역대 최고 성적은 홈에서 벌어진 2002년의 4강 진출이다.

당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2승1무를 거둬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강호들을 잇달아 꺾고 준결승까지 올랐다.

최종 성적은 3승2무2패로 4위였다.

2006년 독일 대회에서 1승1무1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국외 원정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꼈던 한국은 4년 전 아쉬움을 밑거름 삼아 6전7기 끝에 적지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외나무다리에 오른 대표팀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지나 2002년 선배들의 업적에 도전한다.

◇국제 감각 기른 선수들..카리스마 리더십은 그대로
대표팀 선수들의 면면을 비교해보면 현재 대표팀은 8년 전 선배들보다 훨씬 국제 감각을 갖춘 세련된 구성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8년 전 한일월드컵에 출전한 23명 중 외국에서 활동하는 선수는 7명이었다.

맏형 황선홍(당시 가시와)을 비롯해 5명이 일본 J리그에서 활약했고, 유럽에서 뛰는 선수는 안정환(페루자)과 설기현(안더레흐트) 둘뿐이었다.

반면 올해 대표팀은 주장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필두로 무려 10명이 해외파로 채워졌고, 그중 유럽 무대에서 뛰는 선수도 6명이나 될 정도로 전체적인 수준이 높다.

2002년 아직은 국제무대 경험이 약간 부족했던 선수들을 거스 히딩크라는 명장이 조련해 좋은 팀으로 거듭났다면, 올해에는 충분히 경험을 쌓은 선수들을 국내 지도자인 허정무 감독이 조화롭게 이끌며 단단한 팀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와 첫 경기에서 박지성이 터뜨린 추가골은 조직력에서만이 아니라 개인 기량에서도 한국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2002년 대표팀의 히딩크 감독이나 올해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은 똑같이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 팀 전력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허정무 감독은 화합과 자율, 긍정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앞세워 선수들을 동반자로 인정하면서 팀의 화합을 이끌어냈다.

또한 2002년 팀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영원한 주장' 홍명보처럼 이번에는 주장 박지성이 국제무대에서 쌓은 실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팀 전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점도 비슷하다.

◇성적은 조금 부족..고비 넘어선 정신력은 여전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거둔 성적은 2002년이 조금 앞선다.

올해 대표팀은 세 경기에서 1승1무1패를 거둬 조 2위로 16강에 올라갔지만, 8년 전엔 2승 1무로 조 1위에 올랐었다.

2002년 한국은 첫 상대였던 폴란드를 2-0으로 완파하며 산뜻하게 출발한 데 이어 2차전에서 미국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안정환의 동점골에 힘입어 무승부를 거뒀다.

3차전에서는 루이스 피구가 이끌던 포르투갈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끝에 박지성의 환상적인 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우승 후보 포르투갈을 탈락시킨 한 방이었다.

출발은 올해 대표팀이 조금 더 좋았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은 8년 전과 마찬가지로 첫 상대였던 그리스에게 2-0 완승을 거뒀다.

그리스는 불과 6년 전 유로 2004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한 강팀인 반면, 폴란드는 유럽의 강호로 꼽히긴 했지만 전성기는 15년 이상 지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역시 그리스가 13위, 폴란드는 당시 38위로 차이가 많이 난다.

더 강한 상대였지만, 경기 내용 역시 올해가 좋았다.

공수 양면에서 훨씬 빠른 모습을 보이며 그리스를 압박했고 아예 한 개의 경고도 받지 않는 등 훨씬 세련된 경기를 펼쳤다.

올해 대표팀은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와 맞붙어 '제2의 마라도나'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막지 못해 1-4로 크게 졌다.

사상 두 번째로 자책골까지 내주며 첫 경기와 정반대로 실망스런 경기를 했다.

하지만 8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표팀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16강에 진출했다.

2002년 미국과 비기면서 조 최강팀 포르투갈과 부담스런 승부를 벌여야 했음에도 오히려 승리를 거두면서 4강 신화의 서막을 알렸던 선배들처럼, 올해 대표팀은 나이지리아에 선제골을 허용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며 우세한 경기를 했다.

이제 대표팀은 첫 원정 16강에 만족하지 않고 8년 전 기적을 재연하는 '어게인 2002'에 도전한다.

토너먼트 대진은 8년 전보다 좋다.

16강에서 이탈리아와 맞붙어 혈전을 벌였던 선배들과 달리 대표팀은 상대적으로 무난한 상대인 우루과이와 맞붙는다.

16강에서 남미팀 징크스마저 뛰어넘는다면 유독 강팀들이 실력을 떨치지 못하는 이번 월드컵에서 선배들의 위업까지 뛰어넘을 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