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약속만 믿고 투자계획을 세운 기업이 무슨 죄입니까. 정부가 기업 투자와 관련된 정책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해외 경쟁사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습니다. "(대기업 A사 투자담당 임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부가 말을 바꾸다니요. 정치 논리에 기업들이 언제까지 휘둘려야 합니까. "(중견기업 B사 홍보담당 임원)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서 부결되면서 '정책 리스크'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기업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의 타협 실종과 정부의 정책 혼선으로 신수종 사업에 대한 투자가 늦어져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 한화 웅진 롯데 등 세종시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했던 기업들은 세종시 수정안이 상임위에서 부결되자 대체 투자지역 확보에 나서거나 아예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세종시 투자를 계획했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세종시에 추가적인 조건이 주어지더라도 이젠 다른 후보지와 함께 여러 곳 가운데 한 곳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도 수정안 때와 같은 좋은 조건을 내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수정안이 여야 간 첨예한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사업성이 아닌 정치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 야당이 언제 여당이 될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세종시에 안들어가겠다고 버티기도 힘든 노릇"이라며 "이젠 여야 눈치를 한꺼번에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이현석 대한상의 전무는 "정부 계획을 믿고 따른 기업들이 투자전략을 세우는 데 혼선을 빚지 않도록 합리적인 대안을 신속하게 강구해야 한다"며 "주요 정책과제들이 표류하는 일이 없도록 당리당략이나 지역 이기주의가 아닌 국가 장래를 생각하는 대승적 견지에서 결정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