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 전 세계 축구 유망주들이 꿈꾸는 3대 빅리그를 보유한 국가들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나란히 명성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내고 있다.

프리메라리가와 세리에A, 프리미어리그 등 1년 내내 전 세계 축구팬의 눈길을 사로잡는 최고의 리그를 운영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잉글랜드는 이번 월드컵 첫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팀과 경기에서 강호다운 실력을 뽐내지 못하고 졸전을 펼친 터라 더욱 실망이 크다.

스페인은 17일(이하 한국시간) 더반에서 열린 조별리그 H조 스위스와 경기에서 후반 7분 예상치 못한 역습 골을 내줘 0-1로 졌다.

부상 여파로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까지 투입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스위스의 수비벽을 뚫지 못했다.

63%의 높은 볼 점유율을 기록했음에도 실제 경기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전처럼 경기를 지배하지 못했다.

스위스의 두터운 수비에 막혀 특유의 패싱게임이 살아나지 못했고, 결과는 무리한 돌파와 부정확한 슈팅으로 이어졌다.

이날 스페인이 찬 24개의 슛 가운데 정확히 상대 골문으로 향한 것은 8개에 불과했다.

패스가 막히면서 경기가 어려워졌음에도 새로운 공격 활로를 뚫지 못하고 경기 스타일을 고수한 점도 우승 후보답지 않았다.

똑같이 우승 후보로 꼽히던 브라질이 전날 후반 개인기와 속도를 앞세워 북한의 끈끈한 수비를 뚫은 것과 대조적이었다.

15일 파라과이와 첫 경기를 치른 이탈리아의 경기력도 기대 이하였다.

전반전에 먼저 한 골을 허용하고 끌려 다니던 이탈리아는 후반 간신히 동점골을 넣어 겨우 패배를 면했다.

'우리는 원래 슬로 스타터'라고 자위해 보지만, 경기 내용도 예전과 비교하면 좋지 못했다.

'빗장 수비'의 원조답게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날카로운 한 방을 보태 승리를 엮어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수비가 먼저 흔들려 선제골을 내줬고, 공격도 예전에 비해 많이 무뎌진 모양새다.

과거 로베르토 바조나 크리스티안 비에리 등 세계 최고를 다투는 공격수들이 제 역할을 했던 반면 이날 동점을 만들어낸 선수는 미드필더인 다니엘레 데로시(AS로마)였다는 점에서 고민이 계속될 전망이다.

잉글랜드 역시 미국과 경기에서 골키퍼의 어이없는 실수로 동점을 허용해 승점 3점을 챙길 기회를 놓쳤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프랭크 램퍼드(첼시)와 스티븐 제라드(리버풀)의 포지션 중복 문제를 이번에도 해결하지 못했다.

중원에서부터 조직적인 플레이가 이루어지지 못하다 보니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날카로움도 살아나지 못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경기를 마치고 "'뻥 축구'로 돌아갔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이렇게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를 운영하는 세 나라가 정작 월드컵 무대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리그가 다국적화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리그에 거대 자본이 모여들고 이들이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긁어모으는 데 혈안이 되면서 결국 자국 선수가 자랄 기회는 그만큼 작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시즌 각 리그에서 득점 1위는 모두 외국인 선수가 차지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득점 상위 10명 중 자국 선수는 4명이고 이탈리아 세리에A는 6명,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5명에 그쳤다.

독일의 축구 영웅 프란츠 베켄바워는 최근 잉글랜드의 첫 경기에 대해 "축구라고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면서 "잉글랜드 축구의 힘이 약해진 것은 자국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 뛰는 영국 선수의 숫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반대로 그동안 빅리그의 인기에 눌려 왔던 나라들은 이번 대회에서 선전을 펼치고 있다.

좋은 선수와 지도자를 키워 빅리그로 내보내는 대표적인 '축구 수출국' 네덜란드는 덴마크와 경기에서 2-0으로 승리, 강호의 명성을 이어갔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빅리그에서 정상급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즐비한 남미 강호들도 첫 경기에서 승리를 엮어내며 기세를 올렸다.

이번 대회 유럽파를 대거 출전시킨 한국 역시 유로 2004 우승팀 그리스를 2-0으로 가볍게 물리치고 단숨에 조 1위로 올라섰다.

상대적으로 자국 리그 선수들의 비중이 큰 팀들의 선전도 눈에 띈다.

미하엘 발라크(첼시)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전원 분데스리가 선수로 팀을 구성한 독일은 호주를 4-0으로 제압하고 순식간에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일본 역시 혼다 게이스케(CSKA모스크바)와 하세베 마코토(볼프스부르크) 등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 국내파가 대표팀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예상을 깨고 카메룬을 1-0으로 격파, 기세를 올렸다.

(서울=연합뉴스)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