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제문제를 사람으로부터 풀어나가면 제2의 경제비약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3일 작고한 고 유창순 전 국무총리는 박정희 정권 당시 한국은행 총재, 상공부장관, 경제기획원장관 등 경제관료직을 두루 거치며 집권 초기 경제개발 발전 전략 수립에 깊이 관여한 우리나라 경제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장점과 기업인으로서의 사명감,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모두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믿었던 `사람희망론'의 전도사이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1981년 4월7일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IMI)에서 한 강연에 잘 드러나 있다.

유 전 총리는 이 강연에서 "자본주의는 근본에 있어서 국민 모두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주고 개인의 자유.창의력.능력 등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제도"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국가들을 앞설 수 있다"고 설파했다.

자본주의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개인을 국가의 종속물로 간주하는 공산주의와는 달리 자율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스스로 수정을 해왔기 때문에 결국 체제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또 경제가 발전하려면 나라가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를 삼가고 자율과 신뢰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관리들은 흔히 기업가를 믿지 않고 나라를 위하는 높은 차원의 생각은 자기만이 가졌기 때문에 민간의 활동은 규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생각이 없어져야 우리 경제가 바로 될 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당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던 일본 경제의 성공 원인으로는 "노사관계, 인간의 자주성 등 사람에게 의존하는 경제정책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고인은 박 대통령과 통화관리 문제로 의견 충돌을 빚어 관직에서 물러난 그는 이후 한국무역협회장으로 공직에 복귀해 롯데제과 회장과 15대 국무총리, 한국적십자사 총재, 전경련 회장, 호남석유화학 회장 등을 연이어 맡으며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다.

생전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도 각별하게 지냈다.

1981년 전경련 회장이던 정주영 명예회장을 도와 서울올림픽 유치에 기여했고, 2002년엔 현 한나라당 대표인 정몽준 의원이 이끄는 `국민통합21' 창당추진위원장을 맡는 등 현대가(家)와도 인연을 맺었다.

(서울연합뉴스) 홍지인 기자 ljungber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