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 달러 환율이 이상급등하면서 외국인 채권투자자금의 이탈 여부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환율 급등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대량으로 팔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매도까지 가세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이 가속화돼 가뜩이나 불안한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환율 상승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낮다며 외국인이 채권매도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실제로 외국인은 주가가 급락한 25일에도 채권매수를 지속했다. 향후 환율의 정상화 국면에 대비해 매수 규모를 더 늘릴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주식 매도 vs 채권 매수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5817억원어치의 주식을 대량 처분했다. 전날 순매도 규모가 1000억원에 그쳐 잠시 주춤하는 듯했지만 남북관계 악화 우려로 환율이 치솟자 다시 매도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선물시장에서도 장 초반엔 1000억원 가까이 순매수하며 사흘 연속 '사자' 우위를 보였지만 주가낙폭이 확대되자 '팔자'로 돌아서 결국 3924억원 순매도로 마감했다.

권기정 RBS증권 상무는 "악재가 산적해 있는 가운데 환율까지 급등해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1150원대였던 원 · 달러 환율이 최근 나흘 새 100원 이상 급등해 같은 기간 주가하락으로 입은 손실(5%)에다 8~9%의 환차손까지 떠안게 됐다"고 설명했다. 관망하던 외국인 투자자들까지 서둘러 현금화에 가세했다는 설명이다. 서동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전날 원 · 달러 환율이 1200원을 돌파했음에도 외국인 매도가 줄었던 이유는 환율이 더 오를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며 "이날 환율 추가 급등으로 기대가 무산된 점이 대량 매도의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반면 채권시장 외국인은 이날도 2200억원 넘게 순매수했다. 하루 전 1조6375억원어치를 사들인 데 비하면 매수 규모가 크게 줄었지만,현 · 선물을 동반매수하며 막판 채권시장 강세(채권값 상승,금리 하락)를 이끌어냈다.

◆환율 급등은 '일시적 현상'

외국인은 그동안 원 · 달러 환율이 1100~1200원일 때 가장 활발하게 국내 주식과 채권을 순매수했다. 2000년 이후 외국인이 매수한 주식 중 이 구간에서 사들인 물량은 45조원으로 전체 76조원의 절반을 웃돈다. 채권 역시 85조원 중 53조원을 환율 1100~1200원대에서 사들였다.

반면 원 · 달러 환율 1300원 이상에서는 주식과 채권 모두 매도우위를 보였다. 일단 환율 1200원대에서는 매도압력을 받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신동준 동부증권 연구원은 "과거 경험상 채권시장에서 외국인들은 손실률이 10%를 넘어서면 손절매에 나선다"며 "환율이 1300원 선에 근접하면 손절매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과 같은 원화약세(환율 상승)국면이 추세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점에서 외국인의 채권 매도 전환을 걱정하기는 이른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서향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발 더 나아가 "이상 급등한 환율이 머지않아 하향 안정세를 돌아설 것이라고 판단한 외국인들이 추가수익을 노리고 채권 매수세를 확대해 나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주형 동양종금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의 주식 대량매도는 유럽발 위기에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쳤기 때문"이라며 "환율 급등세가 진정될 가능성이 높아 이들의 민감한 반응도 점차 잦아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모건스탠리도 이날 "남북한 긴장고조로 당분간 불확실성이 커지겠지만 원화가치는 곧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