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인류는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도해 상징과 기억부호를 썼다. 암벽화에 인간을 닮은 형상,동 · 식물,별,기하학적 도상 등을 그려넣었다. 잉카인은 실이나 줄에 매듭을 만들어 숫자를 표시하는 결승문자를 썼고,아프리카 아샨티 족은 그림문자 기술법을 가졌다. 또 수메르인들은 도해상징을 점토판에 새겨 재산을 표시했다.

《문자의 역사》는 이 같은 고대문자로부터 현대의 다양한 문자와 컴퓨터,인터넷 언어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발전시켜온 다양한 문자의 역사를 추적한다. 잉카인의 결승문자로부터 그림문자,전언막대,채색 조약돌 등 기원전 4000년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현한 문자체계를 비롯해 이집트,인더스강 계곡,가나안,아나톨리아,에게해 등지에서 등장한 여러 초기 문자들을 소개한다.

또 이후 더 발전한 문자체계로 등장한 페니키아 문자와 이것이 그리스 문자 발전에 미친 영향,알파벳 문자가 탄생한 과정을 시대순으로 보여준다. 아울러 중국,베트남,일본,한국 등 아시아 문자와 콜럼버스의 발견 이전에 있었던 아메리카대륙의 문자들도 분석한다.

뉴질랜드 폴리네시아 언어문학연구소장인 저자는 특히 한글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세종이 중국어에 기초한 한자를 대체하기 위해 내놓은 대안인 한글은 문자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고안된 가장 효율적인 체계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다른 문자체계를 차용해 장기간에 걸쳐 개량한 것이 아니라 언어학적 원리에 따라 의도적으로 발명한 결과물이라는 데 주목한다. 이에 비해 일본어는 역사상 지금까지 존재했던 것 중에 가장 복잡한 문자를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미래에는 문자가 설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비관론에 대해 "읽기와 쓰기가 선사하는 이점과 재미는 컴퓨터의 음성인식체계를 통한 혜택과 즐거움보다 훨씬 크다"고 반박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