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북구 번동 옛 드림랜드 자리에 조성된 북서울꿈의숲은 밤에도 나들이객들로 붐빈다. 1000여개의 경관조명등이 연출하는 화려한 야경을 보기 위해서다. 경관조명등은 그 자체가 볼거리를 제공할 뿐더러 공원 야경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 조경수의 위치나 크기에 따라 경관조명등의 위치 · 각도 · 높이를 잘 맞춰야 나들이객들이 빛의 예술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서울꿈의숲에 경관조명등을 설치한 업체는 42년간 조명등 · 가로등 분야 한우물을 파온 화성조명(회장 박장규 · 68)이다. 박 회장은 "국내 예닐곱개 기업이 참여한 입찰에서 최종 선정됐다"며 "야간에 진행된 현장 시공 때는 전 직원이 철야 작업하며 경관조명등을 달았다 뗐다를 수천 번은 족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의 경관조명등은 인천국제공항,한강뚝섬유원지,보령화력,한강교량,목동야구장과 골드CC,리베라CC,양지CC등 30곳의 골프장에 설치돼 있다.

화성조명은 식품회사를 다니던 박 회장이 1968년 서울 종로구 장사동에 1000만원을 밑천으로 직원 4명과 미군 부대에서 버려진 가로등(일명 수은등)을 주워 수리판매한 것이 출발점이다. 이어 1971년 가로등 분야 국내 1호 KS인증과 제조면허를 받아 서울 장안동에 공장을 마련,생산에도 뛰어들었다.

출범 초기엔 제1차 에너지파동으로 지방도시들이 가로등 발주를 중단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1970년대 중반들어 산업화의 물결로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의 공장신축이 잇따르면서 실내조명 및 외부조명용 수은등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오징어잡이 배에 다는 집어등도 국산화, 일본제품의 절반 가격(2개 한 조에 75만원 선)에 팔아 쏠쏠한 재미를 봤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은 회사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줬다. 박 회장은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암흑의 도시' 서울을 밝게해야 한다는 캠페인이 잇따르면서 가로등 설치수요가 늘어났다"며 "수은등보다 수명이 길고 빛도 밝은 나트륨 등을 만들어 공급했는데 경쟁업체들보다 한발 앞선 아이디어제품이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 필립스 · 오스람 등을 방문하면 한국은 자신들의 기술을 흉내낼 수 없을 것이라며 얕잡아 보고 공장 내부까지 속속들이 다 보여줬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지방도시들의 가로등 발주가 끊기다시피하면서 연 100억원을 올리던 매출은 60억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위기의 순간 박 회장은 되레 천안 백석공단에 20억원을 들여 공장을 완공한다.

그는 "이때 터널을 밝히는 저압나트륨등(일명 노란등)을 개발, 그동안 필립스와 오스람 등에서 전량 수입해오던 것을 대체해 효자상품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1998년엔 국내외 40여개사가 참여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길이 40.2㎞) 가로등 설치 입찰에서 4개월간의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 최종 낙찰을 받아 2002년까지 총 1만여개의 가로등을 설치했다.

화성조명은 2000년대 초 한창 시장을 키워가고 있는 경관조명등 시장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외국제품을 들여와 단순 시공하는 사업만 하다가 직접 개발로 방향을 선회한다. 쉽지 않은 개발과정에서 박 회장은 병을 얻는다. 2002년부터 병원 문턱을 내집 드나들듯했다. 이때 미국 남가주대(USC)에 유학 중이던 장남 박지훈 대표(39)가 귀국해 회사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2004년 6월 귀국 다음 날부터 회사로 출근, 영업 · 생산관리 등을 챙겼다"며 "하지만 10년간 외국생활만 하다 갑자기 귀국하는 바람에 회사업무를 파악하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직원들에게 배우면서 부친이 시작한 경관조명등의 국산화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총 4억여원을 투자, 2008년 초 알록달록한 빛을 내는 외산제품과 차별화되는 조명등을 내놨다.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빛을 내는 경관조명등을 개발한 것.

박 대표는 "한강 · 서강 · 원효대교 등 한강 교량 7곳의 경관조명 리모델링을 하면서 기존 외국산 제품을 떼어내고 우리 회사 경관조명등을 설치했다"며 "이후 '경관조명등=화성조명'으로 통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2008년 12월 사령탑에 오른 박 대표는 차세대 제품으로 LED 광원을 이용한 가로등 및 조명등 개발에 주력,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 제품은 지난해부터 한강뚝섬유원지 등 공원의 경관조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 대표는 "무엇보다 가로등과 조명등은 제품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설계 및 시공기술이 중요한데 이는 오랜 시간 쌓인 숙련도와 노하우에서 비롯된다"며 "그런 면에서 우리 회사는 설계 · 생산 · 시공의 3박자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 매출 목표는 예년과 비슷한 100억원 수준.이 회사는 앞으로 산업용 · 가정용 · 상업용 조명을 아우르는 종합조명 업체로 성장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