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우려도 제기"..시장 신뢰회복이 관건

출범 11년째인 유로화가 그리스 문제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유로화는 지난 주말 뉴욕 외환시장에서 1년래 최저 수준인 유로당 1.3206달러까지 하락한 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그리스 지원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까스로 반등해 1.3384달러로 마감했다.

유로화는 지난 5개월간 미국 달러화에 대해 12%나 평가절하됐다.

그리스 재정 위기가 불거진 이후 유로화는 그 취약성이 노출되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의 통화정책을 총괄하고 있으나 각국 경제상황이 판이한 데다 국가마다 이해가 달라 일관성있는 정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번 그리스 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로화가 장기적으로 미국 달러화를 대체하는 세계 기축통화가 되거나, 적어도 달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하고 있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유럽 대륙의 전반적인 국가 부채 급증이 유로존의 존속에 최대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많은 경제학자는 유로화가 붕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슈피겔은 그리스 외에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소위 'PIIGS' 국가들도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면서 이들 5개국에서 상황이 악화할 경우 유럽 대륙 전체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슈피겔은 일부 국가들의 불안이 지속하면 독일, 핀란드, 네덜란드 등 상대적으로 안정된 나라들이 그리스 등 국가의 재정적 실책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고, 결국 유로화가 유럽에 무거운 짐이 될 것이면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의 말을 인용, "유로존이 공중분해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유럽 국가들이 그리스 재정 위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봉합하고, 향후 이러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에 따라 ECB와 유로존 주요 국가들은 우선 유로화 지지에 대해 강한 정책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투기 세력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이같은 상황의 재발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지난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에게 "모든 유럽국가가 예외없이 (재정적자 문제 해결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스페인이 그리스는 아니다"고 강조함으로써 불안심리 진화에 부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에발트 노보트니 ECB 집행이사 겸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도 "과단성 있는 그리스 지원은 다른 유럽국가에 대한 공격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장과 투기세력에 보여주는 신호"라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재정상황은 그리스와 비교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CB 집행이사인 악셀 베버 독일 분데스방크(중앙은행) 총재도 "유로화는 그리스 재정 위기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금융시장에서 매력적인 통화로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공영 ARD 방송에 유로존 국가들이 통화 안정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경우 투기세력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스 위기와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EU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협약'을 "고의로 우회하는" 행위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유로존 국가들이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협약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쇼이블레 장관은 재정적자와 정부부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각각 3%, 60% 이내로 제한하는 안정 협약의 규정들을 강화해 이를 어기는 국가에 대해서는 투표권을 박탈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독일은 EU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경제 정부', 또는 '유럽 연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 다른 국가들은 회원국의 주권이 지나치게 침해당한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김경석 특파원 k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