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의 특허출원이 늘고 있지만 증권업계는 여전히 특허 등 지식재산권에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들의 특허 취득 건수가 크게 부족한 데다 이마저도 대부분은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등과 관련돼 상품 관련 특허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20일 삼성증권과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전자상거래 관련 비즈니스 방법(BM · Business method) 특허의 법적 기반이 마련된 2000년 이후 금융 관련 특허출원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국제특허분류(IPC) 기준 금융 관련 특허출원 건수는 제도 도입 첫 해에 1만887건을 기록한 후 2002년 4187건으로 줄었지만 이후 늘기 시작해 2005년엔 5000건을 넘어섰다. 2007년에는 한 해 동안 7218건의 특허가 출원됐다. 특허출원 이후 공개까지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이 있어 집계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2008년에도 공개된 특허만 4966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출원 · 공개된 특허는 모두 5만5142건으로 이 중 등록까지 완료된 특허권은 1만5049건이다. 특허는 출원 이후 심사를 거쳐 등록까지 완료해야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등록이 완료된 이들 특허 중 증권사가 보유한 특허권은 44개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증권업계의 특허출원 건수도 134건에 불과했다. 은행이 2000년 이후 4518건의 특허를 신청해 754건을 등록시킨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식재산권 축적을 위해서는 연구 · 개발(R&D)을 수행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춰야 한다"며 "증권사는 은행과 달리 지급결제 서비스에 뒤늦게 진출한 탓에 특허 출원이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나마 증권사들이 보유한 특허권의 대부분은 HTS 등 정보기술(IT)과 관련된 것이다. 보유 특허가 가장 많은 삼성증권(16건)과 대신증권(14건)도 주로 매매기법이나 계좌관리,시스템트레이딩 관련 특허를 갖고 있다. 상품 관련 특허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외국계 투자은행(IB)과는 대조적이다.

한국특허정보원 출신인 배진흥 삼성증권 브랜드전략팀 과장은 "외국계 IB의 경우 상품개발 후 국제특허(PCT)를 내 전 세계적으로 개발 수수료를 벌어들이고 있다"며 "자본시장법 도입으로 국내 증권사도 상품특허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흔히 알고 있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도 실은 메릴린치가 독점사용권을 갖고 있던 특허상품"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전망도 현재로선 그리 밝지 못하다는 평가다. 특허권을 얻는다고 해도 권리를 보장받기가 쉽지 않은 데다 인력 등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점이 문제다. 김용필 신한금융투자 법무팀장은 "금융상품의 경우 구조가 복잡해 유사한 상품이라도 한두 군데의 차이점만 존재하면 무수히 많은 특허가 생겨날 수 있다"며 "독점사용권 등을 주장하기 쉽지 않은 점도 상품 특허출원에 소극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때문에 증권사들은 외국IB의 상품구조를 베껴오거나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판매수수료만 얻는 데 머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덕재 법무법인 화우 변리사는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증권업계의 수요가 늘기는 했지만 아직은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기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방어적인 차원에서 특허를 출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