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총재가 25일 금융통화위원회를 끝으로 의사봉을 내려놓으면서 한국은행은 김중수 신임 총재 내정자 체제로 본격 전환한다.

이르면 이번 주 말 귀국할 것으로 보이는 김 내정자 앞에는 이미 숙제가 잔뜩 쌓여 있다.

당장 다음 달부터 국내외에서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와의 관계 설정이나 정책적 성향을 둘러싼 한은 안팎의 우려를 불식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함께 금통위를 꾸려 갈 신임 금통위원 2명의 인선도 큰 변수다.

◇한은은 이미 `김중수 체제'
이성태 총재는 이날 금통위를 주재하는 것으로 대내외 공식 일정을 모두 마쳤다.

다음 주 임원 및 간부들과 연달아 `환송회'를 갖고 31일 이임식을 하면 한은을 떠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직을 수행 중인 김중수 내정자는 오는 25일 OECD 이사회에 참석하고 나서 귀국길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이르면 28일, 늦어도 30일 전에는 김 내정자가 입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김 내정자를 정식 발령하면 다음 달 1일 총재 업무를 시작한다.

공식적인 일정은 이렇지만, 한은 내부적으로는 이미 `김중수 체제'가 시작된 분위기다.

그는 이메일로 각 부서의 업무 자료를 받아 살펴보고 직접 전화를 걸어 현안을 챙기는 등 이미 `몸 풀기'에 돌입했다.

`넘버 2' 이주열 부총재를 통해 주요 사항을 보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안 산적.."숨가쁜 4월"
김 내정자는 취임하자마자 숨 돌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한은 내부 출신이 아닌 그로서는 낯선 모험이다.

당장 다음 달 9일 열리는 금통위 본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어떻게 결정할지가 관건이다.

시장에서는 동결을 유력시하고 있지만, 역대 최장기간 최저수준을 유지해온 터라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출구전략' 시기를 두고 견해차를 노출한 것도 고려 대상이다.

금통위 회의 후 열리는 통화정책방향 설명회에서 어떤 화법을 구사할지도 주목된다.

데뷔 무대에서 어떤 신호를 보내느냐에 따라 새 총재에 대한 기대와 신뢰도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14일 임시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와 22일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가 기다리고 있다.

한은 총재에 대한 인사청문회 도입이 무산된 가운데 이번 국회 업무보고에는 김 내정자에 대한 `사후 검증'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관과 통화정책 철학은 물론 한은법과 한은 독립성에 대한 그의 견해를 두고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3박4일간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G20 회의는 올해 11월 정상회의 개최국의 중앙은행 수장으로서 국제적 감각과 리더십을 평가받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對 정부 관계설정 시험대
`비둘기파(온건파)'로 분류되는 김 내정자의 가장 큰 과제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중과 어긋나더라도 `할 말은 하는' 총재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은도 정부"라거나 "정책 방향에 대한 최종 선택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독립성에 대한 의지와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임기 초부터 청와대와 정부의 의지에 순종하는 `허울뿐인 총재' 내지 `재정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비아냥거림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나라 경제가 걱정스러운 상황에서는 김 내정자처럼 정부와 잘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 오히려 시장의 신뢰와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준 정부 성격의 금융감독원과 얽히고설켜 있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지도 관심사다.

금융회사 공동검사권 확대와 한은법 개정 문제로 감정의 골이 깊게 팬 가운데 조직 개편이나 한은의 금감원 출자금 중단 같은 문제에서도 두 기관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곤 했다.

◇금통위 인선, 한은 독립성 변수
김 내정자가 이끌 금통위 구성은 또 다른 변수다.

현재 금통위원 중 한은 부총재를 지낸 심훈 위원과 옛 기획예산처 장관 박봉흠 위원이 다음 달 임기가 만료된다.

심 위원과 박 위원 후임은 은행연합회 회장과 상공회의소 회장이 추천하게 돼 있지만, 사실상 정부가 `낙점'하는 인물이 임명될 전망이다.

정부 출신으로는 임영록 전 기획재정부 차관, 김석동 전 차관,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한은 출신 후보로는 박재환 전 주택금융공사 부사장, 김수명 금융결제원장, 정규영 전 서울외국환중개 사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한은 출신의 추천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은에서는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나머지 금통위원 5명 가운데 3명이 대학교수인 상황에서 2명이 정부 측 인사로 채워지면 통화정책의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에 앞서 부총재보 2명이 임기를 마치는 데 따른 임원 및 국ㆍ실장 인사는 외부 출신의 김 내정자가 한은 조직을 어떻게 재편하고 장악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계기다.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홍정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