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인천 서구 마전동에 있는 한화증권 검단토지보상센터 사무실.전화기를 내려놓은 가희정 센터장이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였다. 서랍 안의 검은 넥타이를 챙겨 맨 그는 시 외곽의 장례식장으로 차를 몰았다. 다음 달 이 지역에 풀릴 예정인 토지보상금을 유치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한 지역 주민이 상을 당해 문상을 간 것이다. 그는 "퇴근길 한 손엔 사은품,한 손엔 통닭을 사 들고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닌다"고 귀띔했다.

◆경조사는 기본…밤낮 없이 현장영업

4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인천 검단신도시 토지보상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금융사들이 치열한 유치전쟁을 벌이고 있다. 토지보상금이 전액 채권으로 지급된다는 점에서 채권영업에 강점이 있는 증권사들의 경쟁이 뜨겁다. 채권으로 보상금을 받으려면 증권계좌가 꼭 필요하기 때문.

토지주택공사가 있는 원당동 원당프라자엔 미래에셋 현대 대우 우리투자증권이 점포를 열었고 인천광역시도시개발공사가 자리잡은 토성빌딩엔 한화증권 외에 삼성증권 NH투자증권이 토지보상센터를 개설했다. 일종의 증권사판 '떴다방'인 셈이다. 김포지점에서 출장소를 낸 우리투자증권은 인천WMC지점(PB센터)에서도 새 영업점을 열기 위해 공사에 들어갔다.

이 지역 금융사 지점장들에게 토지보상 대상자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아직 농촌 정서가 남아 있는 지역 특성상 때로는 막걸리도 마시며 주민들과 어울려야 한다. 가희정 센터장은 "평택 고덕지구 토지보상금을 유치할 때는 바지를 양말 속에 넣은 '농군패션'으로 배추 수확을 돕기도 했다"며 "앞으로 한 달간은 일요일도 없이 영업에 매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함승오 삼성증권 PB팀장은 "사실상 보상 시작 전 1주일이 성패를 가름한다"며 "그때쯤 되면 도개공 사무실에서 나오는 주민들을 유치하기 위해 증권사들마다 일종의 호객 행위를 벌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대우증권은 부천지점을 주축으로 영업소를 차리고 인력도 서울 신도림 · 개봉지점에서 2명 더 지원받아 총 7명으로 늘려 전투채비를 마쳤다.

◆보상금 유치용 고금리 특판도

지역 농협과 은행에도 비상이 걸렸다. 검단농협은 4조원의 토지보상금 중 최소한 1조원은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상 대상자 중 농협 조합원이 많아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보상금을 현금이 아닌 채권으로 지급하기로 결정돼 목표 달성을 낙관할 수 없게 됐다.

농협중앙회는 인근 부천지점과 계열사인 NH투자증권 직원들을 검단농협으로 파견해 보상금을 받는 조합원들의 증권계좌 개설을 도와주고 무료 법률상담도 해주고 있다. 문유식 검단농협 원당지점장은 "20여년 넘게 지역농협에 근무하면서 맺어온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조합원들의 채권 환매자금을 예금으로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 기업은행 등 은행들은 증권사와 제휴해 토지보상금을 예금으로 전환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은행 거래고객 중 보상금 수령자를 파악해 증권사에 소개해 주고 증권사는 토지보상채권을 환매해 정기예금에 넣고 싶어하는 고객들을 은행에 연결해 주는 식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은행들은 다음 달 중순 보상금 지급이 시작되면 연 5% 금리의 특판상품을 내놓고 예금 유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보상금 부동산시장 유입 여부 관심

토지보상금으로 풀린 돈이 어디로 향할지 초미의 관심사다. 보상금 수령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채권 보유,환매 후 예금,부동산 투자 등 3가지.

우선 자금여유가 있다면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할 수 있다. 채권을 환매할 경우 환매시기에 따라 할인율이 달라진다. 금리가 하락세를 이어간다면 채권 매도시기를 늦추는 것이 유리하다. 금리가 낮아진 만큼 할인율도 낮아져 채권 환매로 더 많은 현금을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서는 시점에선 채권 매도를 서두르는 것이 낫다.

채권 환매자금으로 부동산에 투자할 수도 있다. 아직 현지 부동산중개업소는 잠잠한 분위기지만 보상금 지급이 시작되면 들썩거릴 가능성도 있다. 이소영 대우증권 검단영업소장은 "보상 규모가 큰 지주일수록 부동산에 재투자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대규모 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희/유승호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