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에도 불구하고 현금배당을 실시하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실적이 일시적으로 악화됐지만 주주 중시 경영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경영진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외국계가 대주주인 일부 기업들은 누적되는 적자에 아랑곳 않고 매년 배당을 실시해 '먹튀'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연도 현금배당을 결정한 830개사 중 45개사가 순손실을 기록한 적자회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순손실이 발생하면 배당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회사에 이익잉여금이 쌓여 있는 경우는 가능하다.

적자임에도 배당하는 기업으로는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휴스틸 애경유화 대상홀딩스 평화홀딩스 동국산업 드래곤플라이 엔케이 와이지원 디지틀조선 등이 대표적이다. 두산중공업 STX조선 SK가스 포스코강판 한국공항 등처럼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적자에도 배당을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한다. 조재훈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주주 권익을 보호하면서 순손실이 추세적이 아니라 일시적이란 점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상선의 경우 지난해 8018억원 순손실을 냈지만 주당 500원씩 총 771억원의 배당을 실시키로 했다. 지난해 해운업황이 일시적으로 악화됐지만 업황이 다시 개선될 것으로 예상돼 2005년 사업연도부터 매년 이어온 주당 500원 배당을 이번에도 지속키로 한 것이다. 현대엘리베이터도 2091억원의 손실을 냈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주당 800원의 배당을 주주들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주당 700원의 배당을 약속한 휴스틸의 경우도 수년간 수백억원대 순이익을 올리다 지난해 25억원 손실을 냈다. 업황 변동이나 일시적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배당을 지속한다는 점을 주주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이 연속된 적자에도 이익잉여금만 믿고 지속적으로 배당을 하고 있어 눈총을 사고 있다. 일본계 기업 아사히글래스가 지분 51.4%를 보유하고 있는 전기초자는 적자가 누적되고 있지만 올해에도 주당 500원을 배당한다. 이 회사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중 4년을 적자에 시달렸지만 배당은 최소 주당 500원 이상씩 계속 주고 있다. 프랑스 생고뱅그룹 계열사인 소피 앙이 대주주인 한국유리도 최근 4년간 지속 적자였지만 배당을 계속하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주주 권익을 고려한다면 적극적으로 소액주주들에게 배당을 더 많이 해주는 차등배당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차등배당을 실시하기로 한 적자기업은 E1 대상홀딩스 남해화학 등이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