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성에 환경친화적 요소까지.'

한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은 시대에 따라 크고 작은 변화를 거듭하며 발전해 왔다.

영세업체에서 제작한 질 낮은 유니폼은 세계적 스포츠브랜드가 수년씩의 연구를 거쳐 개발한 최첨단 유니폼으로 진화했다.

혁신적인 과학 기술과 접목하면서 경기력 향상을 꾀할 수 있는 기능성 제품들이 태극전사들에게 입혀졌다.

이제는 고기능성에 환경까지 고려한 유니폼이 등장했다.

대표팀의 유니폼 변천사를 되돌아본다.

◇빨간색 전통 자리 매김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축구대표팀이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건 1945년 해방 이후 대표팀이 처음 구성될 때부터였다고 한다.

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하고 난 뒤 참가한 첫 공식 국제대회였던 1948년 런던올림픽 당시 유니폼은 상의 빨간 색, 하의 흰색, 스타킹 빨간색이었다.

국가대표 1진(청룡)과 2진(백호)으로 구분했던 1970-71년에는 청룡은 상·하의 파란색, 백호는 흰색 유니폼을 입기도 했지만 대표팀 유니폼의 주류는 빨간색이었다.

1977년부터 상·하의가 붉은색으로 통일됐고, 1980년 한때 검은색과 흰색 하의를 입기도 했지만 상·하의 붉은색 유니폼은 1993년까지 계속되며 한국 축구의 전통 색깔로 자리 잡았다.

삼성물산 라피도는 1994년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을 앞두고 1993년 왼쪽 어깨에 색동무늬를 새겨 넣더니 월드컵 본선 때는 주 유니폼을 붉은색에서 흰색(보조 유니폼은 상·하의 파란색)으로 바꿈으로써 축구팬들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그러나 흰 유니폼은 전통의 붉은색을 버렸다는 비난 속에 결국 2년을 버티지 못했다.

1995년 말 공식후원사가 나이키로 바뀌면서 다시 붉은색으로 되돌아갔다.

대신 이번엔 하의가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부터 물결무늬가 가슴에 새겨졌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태극의 색상을 본뜬 상의 붉은색, 하의 파란색의 유니폼이 자리 잡았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나이키는 기존 대표팀의 붉은색 계열 전통을 지키면서도 그라운드에서 밝고 산뜻한 느낌이 드는 '핫 레드(상의)-데님 블루(하의)' 색상의 새 유니폼을 선보였다.

핫 레드는 한국 선수를 시각적으로 크게 보이게 하면서 상대방에게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게 나이키 측의 설명이었다.

이후 2006년 2월 새롭게 발표된 홈 경기 유니폼은 하의가 파란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었다.

원정 유니폼은 홈 유니폼의 위 아래를 바꿔 흰색 상의와 붉은색 하의로 구성됐다.

◇장기계약에 의한 안정적 유니폼 지원
유니폼에 일대 '혁명'이 찾아온 건 지난 1977년이다.

대표팀은 그 해 3월부터 열리기 시작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부터 유니폼을 공급하는 제조사의 마크가 새겨지고 디자인이 가미된 비교적 세련된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선수들의 어깨에는 대표팀의 첫 후원사인 아디다스의 고유 로고인 삼선이 그어졌다.

이전까지는 영세업체에서 제작하는 질 낮은 원단을 사용하고 디자인 개념도 없었던 유니폼을 입었다.

1977년 아디다스를 시작으로 80년대에는 아식스, 액티브, 프로스펙스, 위크앤드 등 국내외 브랜드가 경쟁적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축구협회가 용품 회사와 장기 계약을 하고 유니폼을 입는 대가로 돈을 받는 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좋은 조건을 내건 업체의 유니폼을 받아서 입었다.

그러다 보니 유니폼 후원업체가 해마다 교체되고, 심지어 대회 때마다 바뀌는 일도 생겼다.

안정적으로 유니폼을 공급받기 시작한 건 1987년 라피도와 장기 계약을 하면서부터다.

대표팀은 1995년 말 스폰서가 나이키로 대체될 때까지 계속 라피도 유니폼을 입었다.

◇진화하는 유니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나이키는 효율적인 체온조절과 통풍을 위해 '쿨 모션' 소재를 사용한 유니폼을 내놓았다.

이때부터 유니폼에 축구협회 엠블럼이 부착되고 이전까지 왼쪽 가슴에 달았던 태극 마크는 왼쪽 소매로 옮겨졌다.

2004년 나이키는 색상은 유지하되 상의 무게를 기존의 185g에서 155g으로 줄인 초경량 유니폼을 다시 선보였다.

하지만 이 유니폼은 앞가슴의 '동그라미 속 선수번호' 때문에 축구팬들 사이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2006년 발표된 새 유니폼은 땀의 빠른 흡수와 건조, 통풍성 등을 강조한 일명 `숨쉬는 유니폼'으로 선수들이 경기 내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나이키는 2년여 연구 끝에 안쪽 표면이 입체적으로 돌기 처리돼 있어 몸에 달라붙지 않는 `스피어 드라이(Sphere dry)'라는 신소재를 적용했으며 옷과 피부 사이 공기 유입량이 늘어나 쾌적한 상태로 경기할 수 있다고 전했다.

디자인에서는 한국 고유의 정서와 전통이 가미돼 목선을 한복의 동정 깃을 연상시키는 `V넥'으로 처리했으며, 옆구리 부분에 호랑이 줄무늬를 사선 형태로 새겼다.

또 등번호 서체는 한글 고유의 직각 및 직선 형태를 띠고 있으며 상의 밑 부분에 `투혼'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기능성에 친환경적 요소까지 고려
나이키의 후원을 받는 남아공월드컵 본선 참가 9개국의 대표팀 유니폼은 고기능성은 물론 친환경성이 강조된 제품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26일 발표된 한국 등 9개국 유니폼의 상의는 사상 처음으로 재생 폴리에스테르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상의 하나에 플라스틱병 8개가 재활용됐다.

나이키의 섬유 협력업체들은 일본과 대만의 폐기물 매립지에서 플라스틱병들을 거둬들여 불순물을 깨끗이 씻어낸 후 라벨을 제거하고 작은 조각으로 잘게 자르고 녹인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실을 섬유로 추출해 환경친화적인 유니폼을 만들었다.

나이키에 따르면 재생 섬유로 만들어진 유니폼은 높은 가격의 원자재를 절약할 뿐만 아니라 원사 폴리에스테르 제조 과정과 비교해 30%까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데 이바지한다.

나이키는 재생 섬유를 활용한 신개념 유니폼을 생산하는데 1천300만여개의 플라스틱병, 총 25만 4천000㎏의 폴리에스테르 폐기물을 매립지에서 수거했다.

이는 축구장 29개를 덮을 만한 양이다.

유니폼 상의를 만드는 데 사용된 재활용 병들을 모아 세로로 세우면 남아프리카의 해안선 전체보다 더 긴 3천㎞에 달한다고 한다.

(런던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