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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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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언론인 출신 작가 헨리 홉하우스는 '역사를 바꾼 씨앗 다섯 가지'에서 세계는 인간의 의지로만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쟁과 혁명 못지않게 자연, 특히 식물이 인류사를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가 꼽은 5가지는 키니네 차 설탕 감자 면화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발전에 후추가 한몫했듯 이들 5가지 또한 인류의 역사를 돌려놨다는 것이다. 키니네가 없었다면 열대 지역에 발을 들여놓은 유럽인들은 죄다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을 테고,대규모 인구 이동은 물론 연합군의 2차 대전 승리도 불가능했으리란 얘기다.

    차(茶)가 없었다면 아편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감자가 아니었으면 아일랜드인의 신대륙 이주 또한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면화가 남북전쟁을 일으켰듯 설탕 생산을 위한 사탕수수 재배가 아니었다면 카리브해를 둘러싼 악명 높은 노예무역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영국 역사학자 노엘 디어도 "2000만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무역에 희생된 책임은 설탕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얘기했다. 미국 독립전쟁이 차세(茶稅)뿐만 아니라 카리브해 제도의 영국령 섬 외의 곳에서 설탕이나 당밀을 수입하면 높은 세금을 물린 당밀조례 탓이란 주장도 있다.

    설탕 소비는 문명의 척도라고 한다. 식품과 음료 등에 안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인 까닭이다. 그러나 문제도 적지 않다. 뇌는 포도당만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데 빨리 소화돼 없어지는 설탕을 과다 섭취하면 뇌는 연료를 공급받지 못해 불안,초조,산만,집중력 저하를 일으킨다. 설탕은 또 칼슘과 마그네슘 흡수를 방해,몸 속 무기질 균형을 깨고 중성지방을 상승시킨다. 소금 · 백미와 함께 성인병을 일으키는 3백(三白) 식품으로 꼽히는 이유다.

    어쨌거나 필요한데 인도와 브라질 등 주요 생산국의 이상 기후로 인한 사탕수수 수확 급감 등으로 원당 가격이 2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파동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제 시장에서 원당의 파운드당 가격이 1년 전(14센트)보다 두 배나 급등했다는 것이다.

    설탕이야 덜 먹으면 된다지만 설탕값이 다른 식음료품 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마당에 한편에선 설탕값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파생금융상품(DLS)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고 한다. 세상 참 요지경 속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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