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의 제도적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사용자의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 금지 조항이 근로시간 면제제도로 대체돼 오는 7월1일부터 시행되고 단위사업장의 복수노조 설립이 내년 7월1일부터 허용되기 때문이다.

근로시간면제제도가 새로 도입되면서 노사관계 불안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체적 시행방안을 마련하는 단계부터 노 · 사 · 정간 충돌이 예상된다. 사용자가 전임자 급여를 지급해 온 오래된 관행 때문에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위반에 대한 처벌을 13년간 유예해 왔다. 그러나 노사관계를 선진화하기 위해선 더 이상의 유예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 아래 이번 법개정에선 유급근로시간 면제제도를 도입해 전임자 급여를 사용자가 지급하는 관행을 개선코자 하는 것이다.

문제는 노 · 사 · 정 합의 이후 입법 단계에서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둘러싼 노사간 공방과 혼란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근로시간 면제제도를 노조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급여지급 제도 정도로 여기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은 정책연대를 맺고 있는 한국노총의 요청을 받아들여 상급단체 파견자도 근로시간 면제대상에 포함하고,면제시간을 활용할 인원을 제한하지 말도록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근로시간 면제의 총량과 구체적인 범위를 정하는 데 있어서 전제조건은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조원들이 스스로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근로시간 면제제도는 이러한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근로시간 면제제도의 도입으로 노조전임자 수가 약 절반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지만 구체적으로 면제되는 근로시간의 총량과 인원은 금년 상반기에 이뤄질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노사 모두 전투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 노사관계를 합리화한다는 차원에서 논의하고 합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노사뿐만 아니라 면제되는 유급근로시간 면제의 총량과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는 근로시간면제위원회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의 의지도 중요하다.

한편 복수노조 도입과 관련해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예방적 조치를 마련하긴 했지만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복수노조 도입 초기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하반기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올해 근로시간 면제제도를 조기에 정착시키는지 여부가 복수노조 제도 시행과 관련해서도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이 경영에 큰 애로를 느끼는 부분이 전투적 노조 때문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노사관계 법 · 제도의 급격한 변화로 우리 기업은 물론 우리나라에 투자한 외국기업들의 불안감도 큰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조사에 의하면 경총 회원사의 88%가 올해 노사관계가 불안정할 것으로 보았다. 매년 경총 조사에서 노사관계를 불안하게 보는 회원사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올해처럼 90%에 가까운 기업들이 노사관계를 불안하게 보는 경우는 근래 들어 처음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노사관계 분야의 경쟁력은 국제기구들의 조사 결과에서도 여전히 최하위 수준이다.

이러한 점을 들어 글로벌 경쟁시대에 노사관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없이는 우리나라가 국제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세간의 우려를 잠재우고 노사관계를 한 단계 진화하게 하는 해법이 필요하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노조전임자의 근로시간 면제제도나 복수노조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정착시키는 것이 그 해법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영범 < 한성대 교수·경제학 >